
오랜만에 들어본 말이다. 여당이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내놓은 공약의 하나이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확대와 금융자료접근권 확대로 세금탈루를 드러내 연간 3~6조원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정부도 얼마 전부터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 가을 국감에서 기획재정부는 "지하경제 비중을 낮춰 누구나 정당하게 세금을 내게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며 "세입 측면에서 세율을 올리는 것은 가장 하책"이라 밝힌 바 있다.
세금을 올리지 않고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상책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하경제를 대상으로 했던 많은 정책들이 효과 없이 실물경제에 과도한 부작용만 초래한 경험들이 있기에 두려움이 앞선다. 다소 극적인 예이지만 지하자금을 양성화한다는 목적으로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취해졌던 화폐개혁의 교훈이 대표적이다. 더욱이 지하경제는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갖기에는 너무나 감성적 단어다. 그래서 지하경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지하경제는 무엇인가. 지하경제 전문가인 오스트리아의 슈나이더 교수는 '공식통계(국내총생산)를 계산하는데서 누락된 생산적인 시장 경제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참으로 차디 찬 정의이다. 왜 공식통계에서 누락되는 가를 보면 지하경제의 실체가 드러난다. 조세, 사회보장세, 노동시장 법규, 행정절차 등을 피해서 이루어지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도박, 밀수 등 행위 자체가 불법이기에 공식통계에서 누락되는 활동도 이에 포함된다.
지하경제는 나쁜 것인가. 지하경제는 박멸되어야 하는가? 안타깝지만 필자의 머리에는 많은 이들의 도덕심에 반할 답변이 맴돌고 있다. 지하경제를 다루는 하책이 바로 도덕심으로 가득 찬 뜨거운 머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여당과 정부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슈나이더 교수는 지하경제를 대처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인 처벌과 기소에 의한 억제책은 그 실증적 효과가 모호하고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해 왔다. 왜 효과가 모호할까? 처벌 위주의 억제책이 자발적 납세의식을 약화시키고, 회피노력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왜 위험할까? 지하경제는 보고되지 않았을 뿐 분명히 생산적인 활동이다. 처벌이 강화되면 생산적 활동 자체가 위축된다. 이제 손익을 계산해보아야 한다. 추가 세수를 위해 생산적 활동을 얼마나 포기할 의향이 있는가? 더욱이 지금은 경기 침체기이자 일자리 하나가 아쉬운 국면이다. 두려움이 앞선다.
그렇다면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줄푸세'가 일반적인 답이다. 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우는 것이다. 왜 그럴까. 지하경제활동은 조세, 사회보장세, 노동시장 법규, 행정절차의 과중함을 피하고자 함이니, 이들을 가볍게 한다면 지하경제는 감소하기 마련인 것이다. 하지만 줄푸세가 국민경제에 어떤 파급효과를 낳는지는 익히 경험하고 있는 바이다. 사실 줄푸세는 현 정부만의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15년간 우리의 경제정책을 지배해온 지침이다. 아쉽게도 초장기적인 정책실험에도 불구하고 줄푸세는 약속한 땅으로 우릴 인도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검증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서 실험만 거듭한 정책도 찾아보기 어렵다. 수출 입국, 중화학공업화, 대규모 국책연구개발사업을 통한 정보통신산업 육성이 겪었던 엄격한 검증의 잣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머리마저 뜨겁게 하지만 이를 위한 정책수단들이 낳을 부작용을 가볍게 볼 수 없다. 복지재원 확보도 여의치 못한 채 오히려 생산적 일자리를 축소시키거나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복지 논의에 손익계산서를 작성해야 하는 난감한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