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신뢰와 소통 사이

[MT시평]신뢰와 소통 사이

이용만 기자
2013.01.17 06:00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신뢰'가 트레이드마크다. 눈앞에 손해가 보이더라도 쉽게 말을 바꾸지 않는다. 옳고 그른 것이던 간에 한번 한 약속은 지킨다. 아침에 한 말과 저녁에 한 말이 다른데, 이를 교묘한 말로 합리화하는 모리배들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덕목이다.

그런데 이런 신뢰의 이미지는 고집불통, 소통부재라는 부정적 이미지와 겹친다.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신뢰의 증거일 수 있지만, 상황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외골수일 수도 있다. 기존 판단이 애초부터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처음 판단은 맞았으나 상황 변화에 따라 그 판단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생각을 바꾸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끝까지 고수한다면, 신뢰라는 긍정적 이미지보다는 옹고집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당선인과 여당은 대선기간 '국민행복시대'라는 국가비전과 함께 이를 구현할 여러 분야의 정책목표, 그리고 이런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들을 제시하였다. 이런 국가비전과 정책목표, 그리고 수단들을 묶은 것이 이른바 대통령 공약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선기간 동안 정책목표의 구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제시된 정책수단들이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순간, 정책수단은 그 자체가 하나의 정책목표가 되어 버린다. 정책수단들이 대통령 공약이 되면, 해당 정책수단이 경제적 효율성을 갖고 있는지, 이보다 더 효율적인 정책수단이 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정책목표는 잊어버린 채 어떻게 하든지 간에 정책수단을 시행하는 데에만 급급하게 된다. 정책수단이 하나의 도그마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역대 정부 모두에게서 발견된 문제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에 대해 지금 더욱 우려하는 것은 박근혜 당선인이 신뢰의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한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의 덕목 때문에 정책수단조차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만들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필자는 주택과 부동산 분야의 정책을 연구하는 경제학자이다 보니 아무래도 이 분야의 공약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이 분야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주거불안정의 해결이다. 국민행복과 직결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많고, 한 두 개의 정책수단으로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다.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있는 다양한 정책수단들을 동원해야 한다. 철도부지 등을 활용한 저렴한 임대주택공급이나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 하우스 푸어를 위한 지분거래제 등은 이런 선택 가능한 다양한 정책수단들 중의 하나이고, 이런 정책수단들은 시장여건에 따라 작동할 수도 있고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정책수단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공약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책수단은 도그마에 빠지게 된다.

정책수단의 선택이란 비용과 효율의 싸움이지 이념이나 비전의 선택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세상에 단 하나의 정책수단으로 정책목표를 일거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야당이 제시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받아들일만한 것은 받아들여라는 당선인의 발언은 긍정적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가 제시한 정책수단이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 좋은 정책수단이 있다면 이를 받아들여라"고 이야기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국가비전과 정책목표는 신뢰로서 확고히 견지해 나가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들은 소통으로 유연하게 선택하는, 그런 정부가 되기를 기대한다. 새 정부가 소통부재의 정부가 되지 않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 한 마디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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