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초부터 시작하여 2007년 초까지 이어져 왔던 수도권의 주택가격 급등 현상은 아직까지 많은 국민들한테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국민들이 이러한 데, 국민들로부터 심판을 받아야 하는 정권이나, 그런 정권을 위해 정책을 개발하고 실행해야 하는 정부 관료들로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이유 중의 하나가 주택가격의 급등이었고, 당시 정부 관료들이 줄줄이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던 것도 주택가격의 급등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 때문이었으니까 이들이 갖고 있는 주택가격의 급등에 대한 우려는 집단적인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라고 부를만하다.
이명박 정부가 처음 들어섰을 때, 주택시장은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침체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택시장의 각종 규제들이 빠르게 완화될 것으로 보았고, 그런 규제 완화로 주택가격이 상승하더라도 정부가 이를 용인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세계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2008년에 여러 규제들을 풀기는 하였지만, 2009년 들어 주택시장이 살아나는 듯하자 선제대응이라는 이유로 곧바로 규제가 다시 되살아났다. 이후 정부정책은 규제완화, 규제원상회복을 반복하며 오늘날까지 그 패턴을 이어오고 있다. 2000년부터 2007년 사이에 일어난 주택가격 급등의 트라우마가 이런 정책 패턴을 낳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주택가격의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분명 성공한 정권이었다. KB주택가격지수를 기준으로 할 때, 2007년 12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5년간 주택가격은 전국 기준으로 연 2.6%씩 상승하였다. 이 기간 중에 수도권은 연 0.3%씩 상승하였다.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상승률이므로, 실질가격으로는 오히려 하락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성공에는 규제 수단들을 적절히 조정해 온 정부정책의 역할이 컸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나 국내외 경제의 침체와 같은 거시적 요인이나 인구구조의 변화와 같은 사회적 요인의 힘이 컸다. 주택시장이 조금 회복될 만하다 싶으면 터져 나오는 미국과 유럽의 위기로 주택시장이 다시 가라앉곤 했음을 고려한다면,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성공 뒤에는 사회경제적 환경의 도움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성공 뒤에는 하우스푸어나 렌트푸어라는 그늘이 존재한다. 주택시장에서 거래가 비정상적으로 줄어들면서 자산과 부채를 조정하지 못하는 하우스푸어가 등장하고, 사람들이 전세시장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면서 전세가격에 허덕이는 렌트푸어가 양산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하우스푸어나 렌트푸어가 정치적 수식어로 들렸지만, 지금은 점점 그늘의 폭이 커지고 짙어가는 느낌이다. 주택시장의 침체가 지속되는 한, 하우스푸어나 렌트푸어 문제를 풀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둘 간의 관계는 이제 상호 의존적인 문제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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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가 지금 주택시장은 반복적인 '규제완화, 규제원상회복'으로 정책에 대한 내성을 갖게 된 것 같다. 규제가 완화될 때 일시적으로 거래가 반짝 이루어지다가 규제가 원상회복되면 거래가 완전히 끊기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취득세와 양도소득세의 한시적인 완화에 따른 거래증가와 그 이후의 거래동결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재 주택시장의 침체 원인이 근본적으로 노동시장의 양극화,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 인구구조의 변화 등에 있다면, 규제완화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규제완화는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주기는 하지만 시장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이런 사실은 역으로, 우리 스스로 주택가격 급등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택가격 급등의 트라우마 때문에 규제를 찔끔찔끔 완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정책에 대한 시장의 내성을 고려한다면, 규제완화는 한시적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이루어지거나 적어도 '주택시장이 정상화될 때까지'라는 단서 하에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주택시장의 정상화가 하우스푸어나 렌트푸어 문제의 해결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