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전국 국공립 대학의 교수 사회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교육부가 2011년에 도입한 이래 점진적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는 '성과급적 연봉제' 때문이다. 이 제도가 '학문과 진리'의 추구를 대학 본연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믿었던 교수들에게 난데없이 자신의 모든 연구, 교육, 봉사 활동을 '돈'과 직접 연결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학을 다른 교수의 월급을 빼앗을 것인가 아니면 내 월급이 빼앗기도록 놔둘 것인가라는 강박에 사로잡힌 교수들 사이의 상호약탈이 횡행하는 반지성의 전당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능주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을 '공인된 지식의 생산'으로 보았다. 그리고 과학 활동은 이른바 '큐도스(CUDOS)' 규범을 따른다고 말했다. 큐도스란 과학지식의 소유권은 궁극적으로 전체 인류에 귀속된다는 '공유주의(communism)', 과학의 진위나 중요성은 객관적 학문적 기준을 토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보편주의(universalism)', 과학 활동은 개인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진리추구에 대한 관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무사무욕주의(disinterestedness)', 모든 지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조직화된 회의주의(organized skepticism)'를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공유'와 '무사무욕' 등을 직업 신조로 삼아온 교수들에게 성과급적 연봉제가 동서고금을 막론한 대학의 핵심 규범에 대한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과급적 연봉제란 각 교수들의 연구, 교육, 봉사 실적을 매년 평가하여, 그것을 네 개 등급(S, A, B, C)으로 나눠 상위 두 개 등급에게 하위 두 개 등급의 성과급 일부 혹은 전부를 나누어주고, 당해 성과급의 26%를 다음 해의 기본 연봉에 포함시키는 제도다. 이에 따라, 전체 교수의 15%에 해당하는 최하위 등급자는 다음 연도에 아무런 보수 인상도 받지 못하며, 전체 교수의 50%를 차지하는 최하위와 차하위 등급자는 기존의 호봉제보다 못한 보수를 받게 되어 실질적인 보수 삭감을 감수해야 하게 되었다.
이런 보수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세계 어느 대학에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다는데 있다. 국내 대부분의 사립대학들은 호봉제를 준용하고 있으며, 성과급형 연봉제를 도입한 일부 사립대학들도 호봉 체계나 연봉 평균 인상률을 적용하고 있다. 서울대와 인천대 등 최근에 법인화한 대학도 기본적으로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본의 법인화된 국립대학들도 여전히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대학들도 성과 이외에 승진, 경력,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들을 연봉 인상에 반영하고 있다.
전 세계 대학이 교수들에게 다른 직종에 비해 특권적이라 할 수 있는 기본 보수와 정년을 보장하는 이유는 '학문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나 사회 그리고 학문에 이익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쫓겨날 불안감을 갖지 않고 독창적이고 논쟁적인 관점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도록 하는 것이 사회 발전과 혁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특권만을 향유하고 학술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 교수들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한국 대학 사회를 경쟁 무풍지대라고 말하는 것은 엄청난 억측이다. 국내 인문사회계의 경우, 대체로 학위 논문뿐만 아니라 다수의 연구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한 수많은 박사들 중 극히 일부분만이 40세 전후에 비로소 신임 교수가 될 기회를 얻는다. 지난 15여년 사이 국내 대학들은 이들 연구자들로 대폭 물갈이 되었으며, 이들은 이미 외국 대학교수 수준 이상의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학계에 '출판하라, 아니면 사라져라(publish, or perish)'라는 말이 있었듯이, 대학은 좋은 학문적 평판을 얻기 위한 교수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된지 오래다. 이런 흐름을 아직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돈다발'을 흔들며 대학을 모욕하고 현혹하며 통제하려 드는 교육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