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지유 고객님의 유출 정보는 아래와 같습니다. 성명, 주민번호, 카드번호, 유효기간, 회사·집 주소와 전화, 휴대전화…."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웠지만 카드사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다. 2개 카드사 정보를 조합하면 어느 회사에 다니는 지, 연봉이 얼마나 되는 지, 결혼을 했는 지, 집주인인지 세입자인지도 상세히 알 수 있다.
장소나 품목, 금액에 따라 할인·적립 혜택이 있는 3∼4개 카드를 번갈아 사용했는데 이를 총 망라한 카드이용실적과 신용한도까지 유출됐다. 평소 나도 몰랐던 내 정보를 카드사들이 수집해오다 도둑맞은 것이다.
KB국민카드와 롯데카드, NH농협카드 3사의 신용카드 고객정보 유출사태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검찰 발표 기준 정보유출 건수는 총 1억400건. 금융감독원이 중복 정보를 제외하고 집계해도 8500만건이다. 신용카드와 연계된 결제은행의 정보까지 샌 피해자도 2000만명에 달한다. 미성년자, 노인 등을 제외한 경제활동을 하는 국민 모두가 포함된 사상 최대 정보 유출 사고다. 시쳇말로 대한민국이 털린 셈이다.
금융당국과 문제의 카드사들은 유출자를 초기에 잡아 원본을 확보한데다 비밀번호, 카드 뒷면 인증코드(CVC) 등이 유출되지 않아 추가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피해가 안 생기면 좋겠지만 개인정보 거래가 어디까지 이뤄졌는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국민들은 불안하고 궁금하다. 신용카드를 해지하면 개인정보가 사라지는 지, 내 카드를 누군가 복제해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무조건 재발급 받아야 하는 지 헷갈린다. 씨티은행과 SC은행에서 유사 사고가 발생한 지 한달 만에 터진 사고라 실망감이 크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주민번호 클린센터가 다운된 것도 국민들의 불안감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 사이트를 통하면 개인정보가 도용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접속이 폭주해 며칠째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카드사들의 안이한 대응에 국민들은 속이 터진다. 콜센터는 하루종일 먹통이고, 현장을 찾아가도 민원인이 넘쳐 최소 4∼5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소중한 고객 정보를 허술하게 빼앗겨 놓고, 상담 예약제를 도입하거나 콜센터 전화비를 대신 부담하는 카드사가 없는 것도 아쉽다.
카드사 사장들이 수차례 고개를 숙이고 회초리를 맞는 심정으로 반성하겠다지만 한번 돌아선 국민들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렵다. 회초리는 애정이 있을 때 드는 사랑의 매 아닌가. 외부 업체에 하도급을 맡기면서 개인정보 암호화는 커녕 이동식저장장치(USB) 저장 금지 등 기본적인 보안 지침마저 지키지 않은 금융사에 애정을 가질 고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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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신용카드 결제사인 '카드시스템즈', 유통회사인 '티제이엑스 컴퍼니즈' 등은 고객정보 유출 사고 이후 결국 회사 문을 닫았다. 우리도 고객의 정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금융회사나 빼돌린 하도급 업체, 헐값에 정보를 사들인 광고대행업체 등을 엄벌해야 한다. 더 이상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재연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