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 서울에 살지 않는다는 것

[MT시평] 서울에 살지 않는다는 것

이항우 충북대 사회학과 기자
2014.01.29 05:25

내일이면 설 연휴가 시작된다. 그에 따른 '민족대이동'도 코앞이다. 직장과 교육 등의 이유로 도시에 사는 자녀들은 명절을 맞아 모처럼 고향집 부모들을 찾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에서 부산까지···"로 시작하는 귀성전쟁 소식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차지할 테다.

주요 출발지는 인구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이고, 도착지는 전국 도처의 지방이다. 확실히 '민족대이동'은 어엿한 '서울사람'(자녀)이 늙고 지친 '지방사람'(부모)을 방문한다는 얼굴도 갖고 있다.

덕담이 오가야할 명절에 안 맞는 화두일지 모르나, 우리의 서울 중심주의는 참으로 유별나다. '서울 가는 길은 출세길, 지방 가는 길은 귀향길'이라 했던가. 우리는 자식을 서울에 못 보내 안달이고, 서울 간 자식은 어지간하면 부모 형제가 사는 지방으로 안 돌아간다.

세종시로 이전한 중앙부처의 공무원들조차도 대다수는 월~금 하루 4시간의 고된 출퇴근길을 마다하지 않거나, 가족은 서울에 두고 '나홀로' 세종시에 사는 기러기 족을 불사하는 지경이다.

나라고 뭐 다르겠는가. 나는 수도권에 땅 한 평 가진 적 없고, 미국의 버펄로와 시애틀에서 8년을 살았으며, 청주에 소재한 직장을 10년 전부터 다니고 있다. 그런데도 서울강남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내려 길을 걷다보면 묘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약 30년의 세월을 돌아 결국 다시 제자리에 온 듯한 느낌 때문이다. 지방행 기차를 타고 창밖으로 멀어지는 서울 야경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대학 입학과 함께 마음으론 영원히 서울사람이 되었지만, 더 이상 그리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자각으로 마음이 불편해기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에 살아야 할 이유는 수만 가지다. 그리고 중심에서 멀어지는 데서 오는 상실감과 소외감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테다. 그래도 우스꽝스러운 것은 우스꽝스러운 거다.

한국을 찾은 서구의 관광객들에게 발 디딜 틈 없이 넘쳐나는 서울 인파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인상적인 혹은 대표적인 관광 상품일지도 모른다. 버펄로, 뉴욕, 워싱턴, 보스턴, 시애틀, 로스앤젤레스, 샌디에고, 벤쿠버, 캘거리, 토론토, 몬트리올, 오타와, 퀘벡, 시드니, 브리즈번, 파리, 브뤼셀, 코펜하겐, 오데세 등 내가 가봤던 선진국 도시들 중 서울처럼 대규모 인구가 밀집하여 살고 있는 도시는 별로 없다.

그러니 서울 관광 체험은 그들에게 일종의 과거로 가는 역사관광이 될 공산도 있다. 내가 방문했던 이들 나라의 중소 도시와 마을도 한국의 지방 도시처럼 낙후되거나 방치되어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지방은 물론 서울 생활도 후진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어디에 살든, 넓고 쾌적하고 자연친화적인 환경에서 경제적, 문화적으로 크게 아쉬울 것 없는 삶을 만들지 않는 한, 우리의 사고와 생활방식은 후진성을 떨치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이렇게 후진적인 서울 중심성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어린 자녀들을 미국으로, 캐나다로, 호주로 조기 유학 보낸다. 입시 지옥이 없는 나라에서 아이들은 아마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아무리 잘해봐야 2등 인간'이라는 의식과 무의식에서 얼마나 자유로울지는 의문이다. 다문화주의 교육과 훌륭한 시민적 덕성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종적 우월감과 장벽이 결코 없지 않다. 그들의 체제와 문화에 어떻게든 끼어 살며 무임승차의 덕을 보려 한들, 우리의 후진성이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지방 사람은 서울을 바라보고, 서울이 성에 안 차는 사람은 미국을 선망하며, 어디든 한 번 간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애초의 출발지로 안 돌아오는, 이 후진적 악순환은 이제 마음으로라도 제발 끝내자는 것, 이것이 설 명절의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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