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사와디하, 그리고 열린 사회의 적들

[MT시평]사와디하, 그리고 열린 사회의 적들

진양곤 에이치엘비 기자
2014.02.06 06:36

히말라야 트레킹 중에 만나는 현지인들은 이국의 낯선 이들에게 환한 미소로 '나마스떼!'라 인사한다. '나마스떼'는 통상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하게는 "나의 신이 당신의 신께 경의를 표합니다" 혹은, "당신의 신이 당신께 주신 능력에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마스떼'라는 말에는 단순한 안부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재능과 상대방 신에 대한 경의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그렇게 그들의 인사말 속에 스며들어 있다.

2PM 닉쿤의 인사로 잘 알려진 '사와디캅'은 태국의 인사말이다. 여자가 할 때는 '사와디카'이다. 인사하는 주체가 남자일 때는 말끝에 캅, 여자일 때는 카를 붙인다고 한다.

최근 태국 출장 중에 현지인으로부터 '사와디하'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성전환자들이 '캅'이나 '카'가 아닌 '하'를 쓴다는 말이다. 물론 공식적인 언어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태국은 트랜스젠더가 가장 많은 나라이며, 이로 인해 성전환 수술이 가장 발달 된 나라가 아닌가. 그들이 '캅'도 '카'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의 인사말을 쓰며, 또 그것이 생뚱맞지 않다는 현지인의 말은 신선하게 들렸다. 다양성의 외침이며 사회적 수용의 모습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말을 듣자마자 김조광수 감독의 동성혼을 떠올렸다. 사회적 미합의를 이유로 혼인신고가 수리되지 못한 것 까지는 양보하더라도, 대학에서의 강연마저 취소되었다는 뉴스에 답답한 마음 금할 길 없었다. 견해는 다를 수 있다. 다른 견해가 틀린 견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른 견해를 통해 걸러진 나의 견해는 대체로 따뜻하며 단단해진다.

필자는 가끔 궁금해진다. 동성혼이 사회질서를 그토록 침해하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 규제돼야 하는지. 예컨대 모태 신앙이 인정된다면,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다른 성 정체성과 그에 기반을 둔 사랑도 존중 되어야 하는 게 아닌지. 모태신앙이 본인에 의해 선택되지 않은 것처럼, 사와디하를 외치는 사람들의 성 정체성도 그들이 선택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고 다른 하나는 죄악시 되고 있는 그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모태신앙은 세상을 평화롭게 하지만, 자리 잡지 못한 성 정체성은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모태신앙으로 비롯된 전쟁은 있었어도 성전환자들이 전쟁을 일으켰단 얘기를 들어본 적 없는 필자는 의아해진다. 내가 이성애를 선택 한 게 아닌 것처럼 그들도 동성애를 선택한 게 아니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이 스스로 선택해서 맹인이 된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왜 그들의 정체성은 꺼림칙한 것이며 그들의 사랑은 담론이 될 수 없는가.

김조광수 감독의 강연 취소가 아이들 교육상 안 좋다는 대학 학부모들의 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사실이라면 나는 묻고 싶다. 동성혼이 위험한 것인가, 상대방의 견해조차 듣지 않으려 하는 편협성이 무서운 것 인가. 아이들 교육에 어느 것이 더 위험한 것인가.

아폴론 신의 주재 하에 정돈된 삶을 살았던 헬레니즘 문명은 기독교 문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이성에 기초한 삶을 확산시키며 인류의 정서를 지배해 왔다. 당연한 귀결로서, 그리스 시대에 횡행했던 동성애나 양성애는 인류의 보편적 상식에 반하는 것이 됐다. 4대 성인 중 하나인 소크라테스가 양성애자였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철학을 배우는 건 교육상 문제없는가?

필자가 최종적으로 의문을 품는 것은 동성혼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성에 대해 이처럼 경직된 접근 방식이 횡행하는 이 사회가 옳은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칼 포퍼는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를 '닫힌 사회'라 규정하면서, 사람들이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든 사상에 대한 비판과 사유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 즉 '열린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합리주의를 제안한다. 누가 옳고 그른지 따지는 것보다 진리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며, 치열한 논의의 결과로서 논의전보다 문제를 더 명확하게 보는 사람이 합리주의자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는 덧붙인다. 진리를 향한 노력과 목표를 가진 사람만이 논의에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할 자격이 있다고. 당신은 합리적인가? 최소한 '열린사회의 적'은 아닌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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