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들꽃과 향유하는 삶

[기고]들꽃과 향유하는 삶

김종민 국립생태원 생태보전연구본부장
2014.06.05 10:55

김종민 국립생태원 생태보전연구본부장

<김종민 국립생태원 생태보전연구본부장>
<김종민 국립생태원 생태보전연구본부장>

지금 국립생태원엔 들꽃 이야기가 가득하다. 삼사월에 이어서 오월에도 흐드러진 들꽃에 흠뻑 취한 생태원이 우리 들꽃을 보다 깊이 알리는 들꽃 특별전을 열었다. 들꽃의 생태를 살펴보고, 들꽃을 음식과 약으로 썼던 선인들의 자취를 더듬고 체험하는 문화와 생태관광이 어우러진 특별한 행사다. 탐스런 보랏빛 꽃과 함께 쉼터도 되어주는 등나무, 화려한 아름다움으로 매년마다 관광객 흥행을 보증하는 장미, 온산에 불타오르는 철쭉 등 5월을 대표하는 꽃이 많아도 국립생태원에서 5월의 주인공은 들꽃이다. 들꽃이 우리의 삶이고 축복이고 위안이고 꿈꾸는 세상이다.

들꽃은 우리네 삶이다. 음식과 약초가 되어온 들꽃. 들꽃은 허기를 달래고 맛을 살려 힘들고 지친 사람에게 빛과 희망이 되었다. 하얀 쌀밥에 냉이와 달래 무침과 쑥국이 오르면 모락모락 기쁨이 일었다. 그런가 하면 체하고 식은땀이 흘러도, 피가 나고 생채기에 덧이 나도 약이 되는 들꽃을 쓰면 아픔이 진정되고 상처가 아물었다. 생태원에서는 드라마 대장금에도 나왔던 야생화를 재료로 만든 궁중음식부터 서민들의 시골 밥상에 올라오는 나물, 또 약으로도 쓰이는 유용한 우리나라의 들꽃을 모아 들꽃 음식 시식과 꽃차 시음도 할 수 있다. 생태원 방문자센터에서는 들꽃 사진과 공예품 전시회를 통해 격조와 가치를 더한 들꽃의 원형을 찾아간다. 작은 들꽃에 눈을 맞추는 겸손한 작가가 아니라도 들꽃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욱 예쁘고 소중하다. 약초에서 독을 중화시키고 약효를 증강시킨 선인의 들꽃 지혜에도 경탄한다. 유용식물인 들꽃을 활용하며 우리 삶도 단단하고 깊어진다.

들꽃은 축복이다. 독일에 3년 간 살며 주말이면 집 앞 공원을 가족과 산책하곤 하였는데, 5월이면 하얗게 펼쳐진 토끼풀 꽃밭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토끼풀 꽃밭에 주저앉아 꽃시계를 차고, 화관을 머리에 두르며 즐거워하던 아내와 딸 아이를 보는 것이 내겐 들꽃 세상이 내려준 축복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장소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나는 들꽃이 이어지는 생태원의 한반도 숲과 습지를 따라 걷는 한두 시간에도 가슴이 벅차다. 자연에 빠져들면 들꽃의 축복도 깊어진다. 들꽃이 청아한 축복의 소리를 발신하고 향기를 발산한다. 독일인들의 애송시인 헤르만 헤세의 ‘안개 속에서는’도 헤세가 뤼네부르크의 들꽃과 관목과 안개 속을 거닐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 또한 자연의 선물이자 축복이다.

들꽃은 위안이다. 싱그런 오월. 하얀 찔레꽃이 피어나고 토끼풀 꽃구름이 일었다. 이팝나무도 하얗고 들꽃과 사람이 물결치는 속에서 생태원이 온통 하얗다. 세상 한켠에 슬픔이 깊고 커도 생태원은 푸르고 들꽃은 들썩거린다. 들꽃은 슬픔을 겪은 사람에게,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평온과 위안을 준다. 생태원을 찾은 사람들의 발길 사이에서 들꽃은 나지막이 아무 일도 아니라고, 이 또한 다 지나갈 거라고 위로한다. 들꽃 생명을 품은 생태원에서 사람들은 위안을 받고 위안을 주는 사람이 되어간다.

들꽃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다. 북녘의 백두산, 높은 티벳 고산지대에도 들꽃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들꽃은 세상 모든 화려한 꽃의 유전자의 원천이자 어머니고 경관의 백미이다. 들꽃을 보고 배우고 알고나면 더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으로 세상은 환해진다. 들꽃이 예술가의 영감을 두드려 깨우고 노래로 퍼져 흐르고 그림으로 일어난다. 기후와 생태계가 달라지는 모습도 들꽃에서 확연하다. 들꽃이 보내는 신호를 알면 자연과 교감하고 공존하기에 충분하다. 생태 관광과 산업, 생태복지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고 자연생태보전연구와 자연자원의 활용연구도 탄력을 받는다. 들꽃이 있어서 우리는, 꿈꾸는 세상으로 한 발짝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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