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스타트업과 대기업의 빚

[광화문]스타트업과 대기업의 빚

장윤옥 부국장
2015.01.06 08:00

미국의 소설가 캐서린 라이언은 ‘페이 잇 포워드(Pay It Forward)’란 소설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의 제목은 당신이 받은 걸 다른 사람에게 갚으라는 뜻이다. 자신이 받은 도움이나 은혜를 바로 베푼 사람에게 되갚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는 선행의 씨앗인 셈이다.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져 더 유명해졌는데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란 제목으로 개봉됐다. 주인공 소년은 학교에서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실천하라’는 과제를 받고 고민하다 일종의 선행릴레이를 생각해낸다. 다른 사람이 직접 하지 못하는 일을 해 주고, 이를 다른 3명에게 같은 방법으로 갚으라고 하는 것. 아이의 작은 선행은 점점 마을 사람들에게 퍼져나가고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많은 화제를 낳았고 줄거리에 감동받은 사람들은 소설과 같은 이름의 재단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최근 미국 경제가 이머징 시장 못지 않은 깜짝 성장을 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같은 성장의 배경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뛰어들어 새로운 혁신과 가치를 만들어내는 스타트업의 활약이 있다. 이 중에서도 미국 스타트업의 산실이라고 불리는 실리콘밸리는 '페이 잇 포워드'란 마법의 주문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CEO중 하나인 시스코의 존 챔버스는 처음 시스코에 들어와서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에 둘러쌓여 애를 먹었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 어떻게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면 좋을지 조언을 해 준 사람은 HP의 CEO 루 플렛이었다. 그 때만 해도 HP는 이미 세계적 글로벌 기업이었던 데 비해 시스코는 이제 막 성장의 날개를 펴기 시작한 기업이었다. 두 사람이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과외수업을 받던 챔버스가 플랫에게 ‘당신의 아까운 시간을 왜 나에게 쓰느냐’고 묻자 플랫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게 실리콘밸리가 돌아가는 방식’이라고. 시스코가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을 때 챔버스가 다른 스타트업 경영자에게 훌륭한 조언자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미래를 바꾸겠다는 포부를 갖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스타트업이 많아지고 있다. 스타트업의 활성화는 저성장과 고령화를 걱정하는 우리 경제가 역동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스타트업을 제대로 키워내려면 우리나라에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투자를 넘어선 페이 잇 포워드 정신의 투자 문화를 심어야 한다.

이 같은 투자 문화를 확산하고 정착시키는 데는 특히 우리 대기업들이 앞장서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 대기업들이 거둔 성과와 성장의 바탕에는 온 국민의 도움과 성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제품의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민들은 낮은 임금과 높은 내수 가격을 감내했고 덕분에 우리 기업들은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서는 성과를 거뒀다. 소외된 이웃을 돕는 등 기업들이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펴는 것도 그동안 받은 혜택을 갚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긴 안목에서 보면 가치 있는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이들의 혁신 DNA를 키워주는 것이 더 바람직한 사회공헌이라고 볼 수 있다. 역량 있는 스타트업들은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력이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경제의 규모를 키우는 것은 물론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는 데도 큰 몫을 할 것이다. 또 규모가 큰 대기업이 하지 못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도 스타트업들이 발군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페이 잇 포워드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화려한 인테리어의 공간을 마련하고 높은 상금을 내건 이벤트 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기업의 경영자들이 직접 나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역량 있는 스타트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내 빚을 갚는 행동이 공동체를 따뜻하게 만드는 것처럼, 이해관계를 넘어선 스타트업 육성이 결국 우리 기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우리 대기업들이 인식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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