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달콤한 약속 '임금인상'

[기자수첩]달콤한 약속 '임금인상'

세종=유영호 기자
2015.03.09 06:40

"임금 안올려줘도 좋으니까 일하게만 해줬으면 좋겠다."

한 취업준비생이 기자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정치권과 정부, 청와대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근로자 임금 및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정작 취업전선에 서있는 그는 불안감을 나타냈다. 가뜩이나 좁은 취업문이 더 좁아질까 걱정이라고 한다.

당·정·청은 임금 인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경우 현재 5580원을 7000~8000원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다.

임금 인상을 추진하는 논리는 명확하다. 임금이 인상되면 그만큼 소비여력이 커질 것이고, 소비 확대로 내수가 살아나면 기업들이 일자리를 확대하며 '경제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라는 것이다. 불황에 디플레이션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그냥 지나치기에 너무 매력적인 정책이다.

임금 인상은 분명 좋은 선택이다. 가능하다고만 하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임금 인상에 그리 호의적이지 못하다. 엔저, 저유가, 중국 성장둔화, 미국 금리인상 등 악재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이 전체의 30.5%나 된다. 자영업자의 24.4%는 최저임금 수준도 벌지 못할 정도로 취약하다. 재계 1위 삼성그룹도 임금을 동결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의 팔을 비틀어 억지로 임금을 올리도록 하면 만만치 않을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 뻔하다. 특히 중소·영세 기업들이 타격을 입고, 일자리 문제가 더 악화될 위험도 크다. 이렇다보니 경영자총협회는 올해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1.6%로 낮게 권고한 상황이다.

기업들은 올해부터 이익의 60~80%를 임금 인상, 투자, 배당에 쓰지 않으면 법인세를 더 내야하는 '기업소득환류세제'도 적용받고 있다. 여기에 통상임금 확대,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생산성 약화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임금을 올릴 수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될까.

집권 3년차, 또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심(票心)'과 직결된 서민 체감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정부의 절박함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경제를 활성화하자면서 경제의 제1주체인 기업을 닦달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다. '황금알'이 급하다고 '거위 배'를 가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지금은 기업의 팔을 비틀 때가 아니라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와 경직된 노동시장을 혁파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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