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직업의 좋은 점으로 흔히 '누구든 만날 수 있고,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다'를 꼽는다. 하지만 이는 때로 '누구든 만나야만 하고, 무엇이든 물어봐야만 하는' 힘겨운 상황이 된다. 요즘 팬택 임직원들을 만날 때가 그렇다.
지난 26일 팬택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폐지를 신청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당장 기사를 써야 하는 입장에서 앞으로 회사가 어떻게 되는지, 직원들 거취 등을 팬택 관계자에게 조목조목 물었다. 당장 자신이 수 십 년 몸담은 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했는데, 야속해도 너무 야속한 기자 아닌가.
팬택에게도 시장논리는 이렇게 냉정하고 야속했을 듯싶다. 삼성, LG 등 국내 양 강 구도 속에 3위가 발붙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반복하며 사업을 지속했지만 버티기가 어려웠다.
법원이 팬택의 법정관리 폐지 요청을 받아들이면 '벤처신화'의 대명사로 불렸던 팬택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가장 걱정 되는 것은 팬택 청산의 후폭풍이다.
당장 팬택 임직원 1100여명이 일자리를 잃는 것은 물론 500여개 협력업체에 연관된 약 7만여명의 생계도 벼랑 끝에 몰리게 됐다. 이미 지난해 8월 팬택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후 협력업체 중 절반 이상이 사실상 폐업상태지만 본격적인 청산절차에 들어가면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팬택이 쌓아온 기술과 특허 역시 뿔뿔이 흩어져 국가 경쟁력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대표적인 R&D 중심 기술기업으로 꼽히는 팬택의 올 1분기 기준 등록특허는 4099건, 출원특허는 1만4810건에 달한다. 팬택은 그동안 끊임없는 금속 테두리 디자인의 스마트폰을 세계 최초로 출시한 데 이어 지난해는 생체인식 기술의 상용화에 성공하는 등 독자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아왔다.
일각에서는 2009년 파산한 캐나다의 통신장비 업체 노텔 '특허잔치'를 떠올린다.
6000개가 넘는 통신기술 특허를 보유하던 노텔은 기업 파산과 함께 특허 경매가 진행됐다. 구글과 애플이 경쟁에 뛰어들었고 결국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노텔 특허를 대량 사들였다.
노텔이 청산되면서 대규모 특허 이전이 일어났듯 팬택 청산 절차가 진행되면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팬택의 특허가 급성장하는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에 넘어가면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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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는 "팬택이 청산되면 보유하고 있던 특허 중 일부가 중국, 인도 등 신흥국 제조사에 유출될 수 있다"며 "여기에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들까지 빠져나가면 팬택 청산 자체 그 이상으로 한국 경제에 비극적인 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원은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의견을 구한 뒤 팬택의 청산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팬택이 스스로 회생절차는 포기했지만 생사 결정은 법원이 판단해야 한다. 어떠한 결정이 내려지든 무조건 시장논리에 맡기기보다 팬택의 가치가 최대한 보호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