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칸에서 세계음악마켓 ‘미뎀’이 열린 지난 6일 한국 뮤지션들의 기자회견이 한창 진행되는 사이, 주변에 갑자기 시끌벅적한 소리가 났다.
유명 연예인이라도 왔나 싶어, 어깨 너머로 보니 카메라 플래시가 끊이지 않고 터졌다. 호기심이 발동해 가까이 다가가자 일단의 프랑스 남성들이 웬 동양계 여성을 에워싸듯 빙 둘러섰다. 지난해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된 한국계 입양아 출신 플뢰르 펠르랭(김종숙·42)이었다.
기자가 다가가 약간의 빈틈을 보일 때, 말을 걸었다. “지금 한국관에서 행사가 열리고 있으니, 잠시 다녀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펠르랭 장관은 “한번 고려해보겠다”며 나머지 일정을 비서관에게 일임했다.
비서관이 약간 서툰 영어로 “원래 5시까지 마쳐야하는데, 여기 대화가 길어져서 모든 일정이 늦춰졌다. 원래 한국관 방문 계획이 일정에 없었던 사안이라 장담은 못하겠지만, 일찍 끝나면 방문 요청 사안을 전달하겠다”고 상냥히 설명했다.
외교적 무례를 범한 건 아닌지 노심초사하며 연인 기다리듯 가슴 설레길 여러 차례. 한국 뮤지션들의 간단한 쇼케이스가 거의 끝나가는 데도 여전히 장관은 원래 자리에서 10m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비서관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네트워킹 파티 시간에는 들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이 파티가 거의 막다른 시간에 다다랐을 때, 다시 장관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장관이 이번에는 아예 앉아있었다. 임시로 마련된 듯한 아주 작은 공간에 장관과 관계자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face to face)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때 시각이 이미 오후 6시30분을 향해가고 있었다. 장관 스케줄은 오후 5시에 행사장을 나오는 것이었는데, 대화를 하다보니 ‘토론’을 벌일 만큼 중요한 일임을 깨닫고 스케줄을 임의로 변경한 셈이다.
장관은 끝내 한국관에 오지 못했다. 하지만 실망감보다 부러움이 컸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풍경은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부터 메르스 사태까지 높으신 ‘위’의 분들은 ‘아래’ 사람들과 제대로 대화를 해 본 적이 있을까. 사안이 중요한 현장을 찾더라도, 현장에 ‘머물러’ 있는 것 외에 다음 스케줄이 어떻든 가슴 열어젖히고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따지고 들며 깊게 대화해본 적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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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니, 발언이 3일마다 바뀌고 정책이 느닷없이 튀어나온다. 메르스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귀 기울이지 않는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놓고 ‘탓’ 논쟁을 벌이고, 책임회피에 급급한 정부는 공포감까지 조성하고 있다.
장관의 스케줄은 빽빽해서 수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민을 위한 일에는 경중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떤 날엔 별 것 아닌 일정인데도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할 때가 있고 또 어떤 날은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그걸 구분하고 정리하고 해결하라고 ‘높은 자리’를 맡기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한 네티즌이 단 댓글은 (프랑스에서 상상하기 힘든) 국민과 정부의 관계가 ‘물과 기름’ 일수밖에 없는 참담한 현실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대통령 : 책임은 없고 권력만 있다/ 복지부장관 : 대책은 없고 머리만 있다/ 국민 :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