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일가정 양립, 인식의 작은 전환으로부터

[기고]일가정 양립, 인식의 작은 전환으로부터

송미란 일생활균형재단 이사장
2015.12.16 03:25

올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조사한 결과 한국은 ‘일과 삶의 균형’ 부문에서 회원국 34개국에 러시아와 브라질을 포함한 36개국 중 33위를 차지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야근과 잦은 회식, 시간만 보내는 회의 등에 샐러리맨들은 지쳐가고 있다. 어쩌다 정시에 퇴근하게 되면 관성적으로 술을 마시거나 잠을 청하면서 업무에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과연 이렇게 사는 삶이 행복할까. 망가져 가는 자신의 건강은 물론, 소원해진 인간관계의 회복, 가족과 나누는 사랑에 관심이 많지만, 시간은 그들에게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회사는 사원들에게 시간을 줄 수 없는 걸까. 사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조심스럽다. 일하는 시간이 줄면 그만큼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자칫 근무환경이 느슨해져 근무태만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노사 간의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갈등을 미리 예상한다. 하지만 작은 인식 전환만으로도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고도 근로자들에게 필요한 시간을 제공할 수 있다. 오히려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근무 만족도가 높아져 업무에 활력이 생기고 집중력을 높이며 창의적인 생각을 갖게 한다. 이는 곧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회사가 생각하지 못했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침 9시에 출근해 4시에 퇴근하는 보리출판사는 3년 전부터 임금을 삭감하지 않고 하루 6시간 노동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매출이 4% 가까이 늘었다. 어떻게 이러한 결과가 가능할까? 바로 '돌봄 시스템'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이 자신의 생활을 돌볼 수 있게 시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는 기업의 생산성과 개인 생활의 질을 높이는 효과로 이어졌다.

고용노동부와 일생활균형재단이 함께 추진한 ‘일가(家)양득 캠페인’을 보면 돌봄 시스템을 위한 다양한 팁을 제공하고 있다. 예컨대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시간을 바꿔 근무 시간을 압축하는 것이다. 바쁠 때는 예외로 해야겠지만, 통상의 근무 시간을 압축해 느슨하게 흘려버리는 시간을 자신을 돌보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두 시간의 여유만으로도 일할 맛을 주고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다.

탄력적인 업무 시간 역시 일과 생활을 양립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한 두 시간 일찍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면, 나머지 시간을 취미 생활로 꾸릴 수 있다. 반대로 오전에 자기계발의 시간을 갖고 출근하여 그만큼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보는 것도 가능하다. 기존의 업무 시간을 유지하면서도 개인의 생활을 돌볼 수 있기 때문에 근로자들은 즐겁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불필요한 회식을 없애고 그 시간을 개인의 시간으로 돌리는 것도 좋다. 사내 팀 분위기를 높이는 데 필요한 회식이 과해지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는 요인이 된다. 이렇다 할 만한 결과 없이 업무연장만 시키는 회의 시간도 아껴야 한다. 불필요한 회의가 길어져 야근을 하게 된다면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회의의 횟수와 시간을 제한해 근로자를 위한 시간으로 돌려주자. 순환보직제나 잡셰어링 대신, 현재 가지고 있는 인적자원을 충분히 활용해 업무의 효율과 능률을 높이는 것도 바람직하다.

일은 가계의 경제적인 면에서나 자기계발 면에서 더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일에 치여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다면 일생이 허무하다. 소중한 일과 생활,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서 행복지수를 더 높여 보자.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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