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경제의 구조적 결함은 출산율 저하와 노령화로 대변되는 노동공급 내지 내수 감소의 문제와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문제가 대표적이다. 전자의 해법에는 출산율 증가와 이민확대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떤 것이든 사회문제와 중첩되어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후자는 경제적 색채가 강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실제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소기업과 중산층이 몰락하고 대기업에 종속이 심화되는 등 악화일로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소 하도급업체들이 하도급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문 닫는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양극화 문제 해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산업구조 개선이 시급하고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거대담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죽어가는 중소기업을 살리는 일이다. 300만 중소기업의 대부분이 어떤 식으로든 2,500여개 대기업과 하도급관계로 엮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들이 정당한 공사나 납품의 결과 응당 받아야 할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이 대금을 받지 못할 때 이론적으로는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구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거래관계를 아예 끊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설사 죽을 각오로 법적 투쟁에 나서더라도 비싼 변호사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복잡한 법적 입증을 하는 과정도 힘에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하도급법 위반행위로 다수·다액의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나 기술유용행위와 같이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공익적 차원의 위법행위는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를 당사자 간에 조용히 넘어가도록 허용하면 산업 전반의 혁신의욕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엄중한 제재를 하여 재발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면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법 위반이 명백한 행위를 엄히 제재하겠다는 원칙을 공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계속되어야 한다.
한편 하도급업체에 당장 절실한 것은 대금을 빨리 받는 것이라는 사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거래관계도 계속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예컨대 당사자 간에 단순히 하도급 대금을 주고받는데 관한 다툼으로 비교적 가벼운 민사분쟁도 법 위반의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당사자 주장이 엇갈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사건이 장기화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행정제재를 위한 조사 등으로 시간을 끌기보다 당사자 간에 합의를 이끌어내 대금이 조기에 지급되도록 하는 것이 하도급업체 살리기에 도움이 된다. 근래 모두가 아쉬워 하는 ‘소통’의 본질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찾아 해결해주는데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대 행정법이 대체적 분쟁해결제도(ADR)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사업자가 나중에 하도급업체에 보복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진정성있는 화해와 상생협력까지 도모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물론 자율적 해결에 소극적이거나 합의결과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 강력한 제재를 하는 것은 필수적인 보완조치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필요한 산업구조 개선의 노력은 하도급업체 살리기를 위한 수혈조치와 동반하여야 실효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 서면실태조사 등을 통해 하도급업체의 등을 긁어주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칭찬할 만 하다. 일부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 30여년 역사에서 최대 공헌의 하나가 바로 하도급대금을 빠르게 받아주는 창구의 역할을 해온 것이라 하기도 한다. 앞으로 익명 신고자의 피해구제를 확대하거나 하도급 옴부즈만(ombudsman) 제도를 도입하는 등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업체 살리기를 위한 창의적이고 입체적인 역할을 다하도록 주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