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렬의 Echo]

인공지능(AI) 알파고와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대결. 그 다섯 번의 승부에서 인간이 만든 피조물은 여유있게 인간을 꺾었다. 기계의 창조주 인간은 충격에 빠졌다. 멀지 않은 미래에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거나 지배하는 디스토피아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마저 던져줬다. 승패를 떠난 이세돌의 도전정신과 패기가 있었기에 이번 빅이벤트는 그나마 감동스토리로 마무리됐다.
바둑을 둘 줄 모르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1202개의 중앙처리장치(CPU)로 무장한 AI와 인간계 최고수 이세돌이 펼친 반상의 치열한 수싸움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 오히려 대국 내내 이세돌이 보여준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를 통해 AI의 바둑실력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아니 오히려 인간보다 세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아야했다.
사실 역사에 남을 세기의 대결만큼이나 관심을 끈 것은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테크놀로지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의 인생역정과, 어느새 AI라는 영역까지 장악한 구글의 존재감이었다.
허사비스는 일약 미래 기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아마도 애플의 스티브 잡스 이후 정보기술(IT)분야 최고의 스타 탄생이 아닐까 싶다. 그는 4살부터 체스를 배워 체스대회를 휩쓸던 체스 영재였다. 그의 어린 시절은 바둑 신동으로 12세에 프로에 입단한 이세돌의 삶과 얄궂은 ‘운명의 장난’처럼 오버랩된다.
고졸출신 게임개발자의 길을 걸었던 허사비스는 명문 케임브리지대학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인지신경과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그의 타고난 천재성과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겠지만, 그 천재성을 지속적으로 키워주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영국의 교육과 사회 시스템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선 제아무리 천재라도 대학졸업장 없이는 사회에 나가 제대로 입에 풀칠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땅의 각 분야 천재들은 대학진학을 위해 죽어라 국영수에 매달려야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천재에서 평범한 인재로 변해간다.
더 부러운 건 사실 구글의 행보다. 2014년 구글은 허사비스가 세운 4년차 스타트업 딥마인드 테크놀로지를 무려 6800억원을 투자해 인수했다. 기술의 가치를 엄격하게 평가하고, 기꺼이 댓가를 지불하는 미국 등 선진국 벤처생태계에서 이 정도 규모의 기업인수합병(M&A)은 빈번하게 이뤄진다. 그동안 첨단 IT분야를 주도해온 마이크로소프트, HP, 애플 등의 기업역사는 사실 M&A를 통한 성장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벤처생태계는 어떨까. 알파고는 못만들었지만, 혹여 '오메가고'는 만들어낼 기업을 키워낼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를 받을까. 현장에서 만난 대다수 스타트업과 중소벤처기업 CEO들의 답은 부정적이다.
독자들의 PICK!
“아직도 대기업에서 기술도면 가져오라면 아무리 많은 돈과 노력을 들인 기술이라도 가져다줄 수밖에 없다. 당장 밥줄이 끊어질 수 있어서다. 갑질을 넘어 계급화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국산업의 미래는 없다. ”
‘설마 아직도’가 아니다. 첨단분야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중국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한 중소기업 CEO의 피맺힌 토로다. '협력 중소기업의 기술은 우리 기술이고, 안되면 핵심인력 몇 명 빼오면 된다'는 비정상의 마인드가 횡행해서는 결코 딥마인드 같은 회사의 탄생을 기대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