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찌하다 보니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만 36년째 거주하고 있는 '상도동 토박이'다. 비록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초·중·고등학교를 이 지역에서 모두 마쳤고, 지금껏 거주하다 보니 상도동은 나에게 고향과도 같은 곳이 됐다.
그런데 내가 지금 살고 있는(엄밀히 말하면 부모님의 집이 있는) 상도4동이 몇 년 전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시범지역으로 선정됐다. 마냥 좋아할만한 소식은 아니었다. 상도4동이 서울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도4동이 지금처럼 마냥 낡고 특성 없는 마을이었던 건 아니다. 나무가 심어진 작은 정원을 갖춘 단독 주택들이 옹기 종기 모여있는, 이웃의 정과 인심도 후한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봄이면 활짝 핀 매화 꽃과 개나리 꽃이 등·하교길을 반겼고, 5월이면 집집마다 빨간 장미 꽃이 담장을 가득 메웠다.
얼마 전 TV에서 종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보여준 콩 한쪽도 이웃끼리 나눠 먹는 살가운 동네 풍경이 어릴 적 상도4동의 모습이었다. 집 앞 골목길에서 동네친구들과 정신없이 뛰어놀다 저녁 때마다 "누구야! 밥 먹어라"라고 부르던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상도4동은 1990년대와 2000년대 들어 광풍처럼 몰아친 재개발·재건축에서 소외됐다. 정답던 이웃들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하나둘 동네를 떠나갔다. 결국 상도4동엔 단독 주택을 몇 채 헐어 공장에서 찍어낸 듯 특성 없이 지어진 빌라 밖엔 남지 않았다. 지금도 곳곳에 단독주택을 헐어 똑같이 생긴 성냥갑 빌라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동네를 걷다보면 작은 정원이 있고 나무가 심어진 정겨운 단독주택은 이제 몇 채 남지 않았다.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은 서울 마을이 똑같이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서울의 단독주택 마을 곳곳에서 빌라가 대규모로 지어지고 있다. 거주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삶의 질은 더욱 악화되는, 서울시가 도시계획에서 가장 우려해야할 만한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상도4동의 경우도 도시재생지역으로 선정된 지 몇 년 지났지만 빌라가 지어지는 추세는 예전보다 더욱 빨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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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우리 마을이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되자 많은 기대를 품었다. 공공자금으로 마을 곳곳의 집을 매입해 조그맣고 예쁜 공원이 조성될 것이라고. 주민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작지만 실용적인 마을 도서관이 들어설 것이라고. 하루 종일 차들이 왔다 갔다 하는 집 앞 도로도 '보행자 중심거리'로 산뜻하게 되살아날 것이라고. 그리고 하늘을 보기 싫게 뒤덮은 전봇대와 전선들이 지중화되면서 예쁜 거리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수년 째 어떠한 변화도 없고, 동네엔 빌라만 늘어날 뿐이다. 어머니도 지난 주말 집 주변 단독주택 몇 채를 함께 매입해 빌라를 지으려는 부동산개발업자로부터 집을 팔지 않겠냐는 전화를 받으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예! 팔게요"라고 대답하셨다고 했다. 나도 이제 상도동에서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