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보훈처장의 신념과 유언비어

[광화문]보훈처장의 신념과 유언비어

서정아 정치부장
2016.05.17 11:27

[the300]

국민통합을 위해 내렸다는 결정이 나라를 더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못하게 하고 합창단의 합창만 가능하다는 국가보훈처의 결정이다.

찬반의 근거를 따지고 들어가면 수많은 입장도 있다. 국가기념일 지정곡이 아니라는 것, 앞으로 비슷한 기념일마다 각각의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는 요청에 매번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등.

그런데 이미 이 노래는 1997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불리고 있다. 사전행사에서만 부르다가 공식행사로 식순이 바뀌었고, 참석자 전원이 제창하다가 2009년부터 보수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제창에서 제외됐다.

무엇보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매년 광주 5·18국립묘지에서 열린다. 참석자들도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온다. 이런 자리에서, ’제창은 (반대자에게) 강요하는‘ 것이라는 보훈처의 제창반대 이유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그날을 기리는 가장 상징적인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데는 박승춘 보훈처장의 신념이 한몫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국가보훈처가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듯이, 보훈처는 16일 보도자료에서도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담았다가 자료를 수정배포하기도 했다. 보훈처는 첫 보도자료에서 “ ‘임을 위한 행진곡’이 1991년 황석영, 리춘구(북한)가 공동집필하여 제작한 북한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 배경음악으로 사용됨으로 인해 노래 제목과 가사내용인 ‘임과 새날’의 의미에 대해 논란이 야기되었으며, 특히 작사자 등의 행적으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계와 양립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어 제창시 또 다른 논란 발생으로 국민 통합에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는 일부 보수단체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이 주장은 지난 2009년 제기됐으나 지금까지 확인된 바도 없다. 하태경 의원은 언론인터뷰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게 다 근거없는 유언비어고, 더 큰 문제는 보훈처가 이를 직접 유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 찬양곡으로 의심하면 합창도 하지 말아야죠”라고 주장했다.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절반이상이 행사 지정곡으로 정하는 것에 찬성의사를 나타냈다(리얼미터).

며칠째 검색어를 오르내리는 이번 사건이 확대되면 될수록 어떤 파장을 남길지 새겨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지난 4.13 총선의 연장선이다. 총선결과는 여러 의미를 던졌지만, 그중에서도 현재의 보수세력이 변신을 시도하지 않으면 더이상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힘들다는 것이다.

합리적 보수가 아니라 ‘이념팔이’에 치우친 극단적 보수집단의 주장은 걸러 들어야만 한다. 참여정부 말기 때 국민들이 ‘운동권식 정치’에 피로감을 느꼈다면, 이제 ‘종북·친북몰이’는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 총선에서도 막판에 ‘종북 정치인’ ‘동성애 조장 의원’ 등의 주장이 급속하게 퍼지면서 세를 얻는듯했지만 표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서 부산경남지역과 일부 세대의 새누리 이탈을 매우 중요한 신호로 본다. 새누리 전통적 지지자들의 근거지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으로, 앞으로 보수세력이 중도집단을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집권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ps. 1980년 5월 당시 광주시민들이 거리에서 부른 노래는 애국가였다. 맨부커상 수상으로 주목받고 있는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의 한구절이다.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거야 (본문 173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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