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책임론' 산업은행, 그래도 존재 이유 있다

[우보세]'책임론' 산업은행, 그래도 존재 이유 있다

이학렬 기자
2016.05.25 15:04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 금융당국이 종종 은행권에 당부하는 말이다. 기업이 어려울 떄 자금을 회수해 더 어렵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은행 입장에선 건전성과 수익을 이유로 기업이 비를 맞을 때 우산을 뺏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반면 KDB산업은행은 마지막까지 기업에 우산이 돼준다.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지난해 STX조선해양 채권단에서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신한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잇따라 빠져나갈 때 산업은행은 자리를 지켰다. 그게 국책은행으로서의 역할이기도 하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산업은행처럼 기업 부실을 책임지는 배드뱅크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업과 해운업 부실이 심각해지자 대주주인 산업은행 책임론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 내부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냐'는 자조가 나온다. 정부가 시켜서 한 일인데 책임은 우리가 진다는 하소연이다. 조선업과 해운업 구조조정이라는 큰 그림은 산업은행이 아니라 정부의 몫이다. 산업은행에는 큰 그림을 그릴 능력도 없다. 조사부 조직이 있지만 30여명에 불과해 큰 그림을 그리기에는 부족하다.

산업은행의 하소연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최대주주이고 현대상선의 주채권은행인 만큼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선 산업은행은 정부가 구조조정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줬어야 했다. 대우조선과 현대상선 등 위기를 겪고 있는 회사에서 받은 자료에만 의존하다보면 장밋빛 전망밖에 나오지 않는다. 조선업과 해운업의 미래를 전망할 능력이 안되면 적어도 해외 기업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봐야했다. 세계 1위 해운업체 머스크라인이 어떻게 구조조정을 했는지만 조사해 대처했어도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지금과 같은 위기를 겪지 않았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대주주로 조선업의 위기를 사전에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나 무능했다. 기업 곳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면 회사 전체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기업을 인수한 뒤 가장 먼저 바꾸는 것이 CFO(최고재무책임자)다. 산업은행이 출자전환을 통해 대우조선의 최대주주로 올라선 이후 대우조선의 CFO는 줄곧 산업은행 출신이 맡아왔다.

산업은행 출신의 대우조선 CFO는 15년간 회사가 망가지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기업이 적자를 낼 때 대우조선만 흑자를 낸 것이나 영업현금흐름이 마이너스를 지속한데 대해 '왜'라는 의심을 갖지 않았다. CFO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부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대우조선 사장을 마음대로 임명할 수 없었다'는 변명은 핑계일 뿐이다.

"기업이 산업은행에 손을 벌리면 산업은행 담당자가 잘해준다고 합니다. 자기가 산업은행을 나왔을 때 가야할 갈 곳이라고 생각하니까 지원을 잘 해준다는 거죠." 최근 만난 금융권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산업은행이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자회사에 낙하산 인사를 일삼는다는 지적이다. 산업은행이 매각해야 할 자회사는 132개에 이른다. 구조조정을 하기에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때론 정치권 입김도 작용해 매각하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산업은행이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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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렬 기자

머니투데이에서 사회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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