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최순실 모르쇠'와 닉슨의 교훈

[광화문]'최순실 모르쇠'와 닉슨의 교훈

채원배 사회부장
2016.11.04 04:20

# 미국 워싱턴 포토맥 강변에 위치한 워터게이트 호텔(Watergate Hotel).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6년 10월 IMF(국제통화기금) 연차총회 취재차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그 곳을 들른 적이 있다. 당시 그 호텔 앞에서 한 무리의 미국 학생들이 교사로부터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었는데, 교사는 학생들에게 '게이트'와 '크룩(crook·사기꾼)'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아픈 역사가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1972년 이 호텔에서 발생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재임 중 물러난 대통령이 됐고, 이후 정치권력이 연루된 대형 비리 스캔들에 '게이트'라는 말이 접미사처럼 붙게 됐다. 당시 닉슨은 기자회견에서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I'm not a crook)"라며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닉슨 최측근들이 도청공작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며 진상을 은폐한 닉슨은 결국 크룩(crook)이 돼 버렸다.

#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난 지 44년이 지난 지금. '최순실 게이트'가 우리나라를 뒤흔들면서 워터게이트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고, 정치인들이 앞다퉈 이를 언급하고 있다. '최순실 사태는 워터게이트보다 더 위중한 헌법질서 파괴'(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국민의 뜻을 따라야지 꼼수를 부리면 워터게이트 코스로 갈 수 있다'(주호영 새누리당 의원)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게이트가 터지면 관련자들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으레 하는 행동과 말이 있는데, 바로 '모른다' '아니다'이다. 검찰에 소환될 때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고 했던 최순실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검찰 조사에서 대부분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국정을 농단하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게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모르쇠' 전략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최씨에게 적용 가능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제3자 뇌물수수죄 공범, 대통령기록물관리법상 무단반출금지위반 등 10개 내외지만 검찰이 구속영장에 기재한 혐의는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사기죄 미수' 2개뿐이다. 검찰은 혐의 입증이 상대적으로 쉬운 것부터 영장에 적시했고, 추후 수사를 통해 혐의를 추가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서인지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법조계에서도 검찰 구속영장에 기재된 혐의가 예상 밖으로 적다며 최씨에 대한 처벌 수위가 고작 수년형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최근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된 '최순실 사태 16단계 예언'처럼 돼 가고 있는 셈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종착역이 어디일지 모를 정도로 까도 까도 끝이 안 보이는데, 검찰 수사는 적당한 선을 찾고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이번 사태의 배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고 있는데도, 검찰은 그동안 "헌법상 대통령은 형사소추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어왔다. 뒤늦게 검찰이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청와대도 수사 수용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필요한 순간이 오면 결정하겠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청와대만 모르고 있을 뿐 필요한 순간은 벌써 왔다. 아니 그 순간이 이미 지나갔을 수도 있다. '최순실 게이트'는 박 대통령이 입을 열지 않고서는 실체적 진실이 드러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임 기간중 진실을 잠시 덮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진실은 밝혀질 수밖에 없다.

'이게 나라냐', '봉건시대에 살고 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들을 분노와 허탈감에 빠트린 '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후손들에게 아픈 역사를 남기는 것이다. 이미 아픈 역사는 만들어졌지만 그래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는 역사를 남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박 대통령이 진실을 밝히는 것뿐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크룩(사기꾼)이 된 닉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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