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전국에서 살 처분한 닭, 오리의 규모가 2000만 마리에 육박할 것이란 보도가 나왔다. 고병원성 인플루엔자(AI) 발병,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다. 2000년 초반 AI가 처음 발생한 이후 가장 빠른 속도의 전염이다. 보건당국은 AI 방역단계를 최고등급인 ‘심각’으로 격상했지만 속수무책이다.
최근 페이스북에 재미있는 동영상이 올라왔다. 고양이가 앞에서 ‘까부는’ 쥐를 두고 어찌할지 궁리하는 틈에 커다란 닭이 뛰어와서는 바로 쥐를 물더니 급기야 이리저리 패대기를 치며 ‘사냥’을 끝냈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이 사건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은 일갈했다. “닭은 살아있는 공룡”.
닭은 날지 못하는(지붕 정도까지 나는 닭도 있긴 하다) 새다. 새의 조상은 공룡이다. 그러니 닭이 살아있는 공룡이란 말은 틀리지 않는다. 어릴 때 닭을 키운 기억이 난다. 닭은 절대 순하지 않았다. 탐색하는 표정과 갑작스러운 공격이라니. 서열 싸움도 대단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암탉 한 마리가 초주검 상태가 돼 있기도 했다.
닭은 사람이 필요해서, 즉 먹자고 사육한 가축이다. 지금으로부터 2000~3000년 전, 들에서 사는 ‘멧닭’을 가축용으로 기르기 시작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후 상상을 초월하는 사육농장이 만들어졌다. 고기를 주기 위해, 알을 주기 위해 닭들은 몸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공간에서 24시간 지낸다. 그러다 인간이 독감을 앓듯, 바이러스가 한번 창궐하면 이렇다 할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생목숨을 내놓는다.
AI의 원인도 문제지만 무차별 살 처분하는 국내 현실의 심각성이 지적된 지도 오래다. 우리보다 한 달 먼저 AI가 휩쓸고 간 일본을 보자. 일본의 살 처분 규모는 60만 마리 미만이었다고 한다. 오리를 식용으로 키우지 않아 대상이 적다는 특성도 있었지만, 농장 내 닭의 밀집도가 우리나라보다 현격히 낮다. 또 알 농장을 관리하고, 수송하는 인간의 방역이 더 철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감염을 아예 막을 수 없더라도 전염을 최소화할 시스템이 우리보다 일본이 낫다는 얘기다.
우리에게도 ‘안전지대’는 있다. 전남 ‘동물복지 농장’이다. 그 지역에도 바이러스가 검출돼 30만 마리 정도가 살 처분 됐다. 하지만 같은 지역 내 동물복지형 축산농장은 피해가 없다는 소식이다. 인증마크가 부여되는 농장들의 공통점은 자연 방사형, 즉 닭들이 좁은 공간에 갇히지 않고, 쾌적한 환경에서 자란다는 점이다. 철새가 이곳 닭들만 사랑해 안 들렸을 리 없다. 면역력이 좋아 바이러스에 강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에 토 다는 이 없다.
최재천 전 국립생태원장도 같은 문제의식이다. “2003년인가, AI가 처음 발생해 당국이 공청회를 열었죠. 세계 다양한 종의 알과 닭을 가져와 서로 다른 조건으로 키워서 발병과 전염 정도를 연구하자고 했죠. 10년 연구비를 지원해달라고 했습니다. 돌아온 답은 ‘여기서 그런 장난 하시면 안 되죠’더군요. 그게 장난입니까? 10년 전 연구를 시작했다면 그 원인을 아직도 못 밝혔을까요. 더욱이 지금 사육 현실을 보면 AI 바이러스는 이 땅에 내재하고 있지 않을까, 의심해야 할 지경입니다. 철새나 닭이 무슨 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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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은 닭의 해다. ‘십이지간’ 동물 중 하나인 닭의 사나움이나 영민함, 닭띠 CEO 등 유명 인물은 누군지, 곧 새해를 힘차게 여는 주인공이 될 녀석들 얘기가 벌써 나온다. 그 와중에 떼죽음 당하는 닭 얘기를 듣자니, 달걀값이나 달걀이 들어가는 식품 가격 인상에 대한 걱정만큼이나 마음이 좋지 않다.
‘살아있는 공룡’ 닭을 잡아먹기 위해 지켜야 할 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