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골든타임 또 놓친 정부, 재앙으로 번진 AI

[우리가 보는 세상]골든타임 또 놓친 정부, 재앙으로 번진 AI

송지유 기자
2016.12.22 05:3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그때는 치킨을 먹으면 사람한테도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염된다는 괴소문이 파다했지. 몇 달이나 장사를 망쳤는지 몰라. AI 사태가 힘겹게 진정돼도 연례행사처럼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것이 지겨워 결국 치킨집을 접은 거고."

치킨집을 운영했던 절친 A의 부모님이 분식집으로 업종을 변경한 스토리다. 국내에서 AI가 처음 발생했던 2003년 당시엔 닭·오리 등 가금류의 소비절벽 문제가 심각했다. A 부모님처럼 매출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는 치킨집이 속출했다. 75℃ 이상에서 5분만 조리하면 AI 바이러스가 사멸돼 음식섭취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건 최근 수년 사이의 변화다.

AI가 재앙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전남 해남 농가에서 최초 의심 신고가 접수된 지 한 달여 만에 가금류 2000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이는 역대 최단기간 발생한 최악의 피해다. H5N8형 고병원성 AI 여파로 669일간 1937만 마리를 살처분한 2014~2015년의 종전 최대 피해 기록도 단숨에 넘어섰다.

특히 번식용인 산란종계 중 38.6%가 살처분돼 양계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알을 낳는 산란계 역시 5마리 중 1마리가 살처분돼 계란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한달 만에 계란값이 25% 뛰었고 이마저도 물량이 부족해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는 '1인1판(30알)'으로 판매제한 조치에 나섰다.

문제는 AI 피해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소독·살처분 등 방역대책이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AI 바이러스를 보유한 야생철새는 계속 유입되고 있다. 병아리를 입식해 알을 낳는 닭으로 키우는데 수개월이 걸리는 만큼 계란 대란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계란을 즐겨먹는 서민은 물론 제품 주재료로 계란을 쓰는 제빵·제과 등 식품업계의 불안은 날로 커지고 있다. 조만간 계란이 들어가는 제품 가격이 잇따라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AI 사태가 무서운 속도로 번져 서민 식탁 물가를 위협하고 있는데 정부는 늑장 대응과 실효성 없는 대책으로 피해만 키우고 있다. 최초 의심신고 후 일주일 뒤에 '경계' 위기경보를 했고, AI가 사실상 전국으로 퍼진 뒤인 한 달 만에야 최고 등급인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시장에선 계란이 부족하다고 난리인데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는 현실이다. "그동안 국내 계란 수급이 과잉공급 상태였다"는 기획재정부의 해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유통기한이나 비용 등은 검토도 하지 않고 "항공편으로 계란을 긴급 수입하겠다"는 농림축산식품부의 현실감 없는 대책도 한심하다.

지난달 비슷한 시기 AI가 발생한 일본에선 발생 건수 6건, 살처분 102만 마리에 그쳤다. AI 확진 판정 뒤 2시간 만인 밤 11시에 아베 총리의 '철저한 방역' 지시가 있었고 다음날 새벽 4시 방역작업이 시작됐다고 한다. AI 경보를 최고 등급인 3등급으로 올리고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범정부 차원 대책을 마련한 것도 모두 12시간 안에 이뤄졌다.

우리는 최순실 사태로 정부 부처가 일손을 놓으면서 AI 방역 컨트롤타워가 무너졌다. AI를 잡을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AI 바이러스를 지닌 철새들이 매년 똑같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지만 두 나라 정부의 대처 능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무능한 한국은 그저 AI 바이러스가 스스로 약해질 봄을 손꼽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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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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