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
지난 10월말 정부가 아닌 한 대학 연구팀이 고병원성 AI 검사를 의뢰한 것을 두고 안일한 대응을 염려했는 데 사태가 이렇게까지 번질줄은 짐작조차 못했다. 감염된 산란계가 대거 살처분되다 보니 전국 대형마트엔 계란품귀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게다가 사상 최악으로 평가받는 이번 AI사태는 국내 가금류 농가의 존폐까지 위협할 기세다. 안타깝게도 정부는 하늘만 쳐다볼 뿐 AI종식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달 16일 충북 음성과 전남 해남의 농가에서 고병원성 AI가 처음 발생한 후 살처분 된 닭·오리 등 가금류는 한 달새 2100만수를 넘어섰다. 큰 피해를 가져온 2014년 1월~2015년 11월 AI 당시 669일간 살처분 된 가금류가 총 1937만수 였으니 이번 AI 피해속도는 가히 '광속'에 비유될 만 하다.
무엇이 달랐고, 어떻게 대처했기에 이런 결과를 방치한 걸까. 방역책임을 맡고 있는 정부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 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방역을 담당하고 있는 검역본부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분명 어려움이 있다. 이번 바이러스 유형이 이제껏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은 H5N6형 인데다 비슷한 시기에 H5N8형 바이러스마저 검출되는 등 상황이 엉켰다. AI 전파경로도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였다. 지금까지는 농장간 수평이동에 의한 바이러스 확산이 원인이었지만 이번에는 철새가 바이러스를 퍼뜨리다 보니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AI가 발생해 사태가 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재난상황에 대처하는 게 정부의 존재이유라고 한다면 이번 AI사태를 불러 온 가장 큰 요인은 국정 컨트롤타워의 부재로 보인다. 국회에서 탄핵안 가결로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곧바로 대통령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섰지만 공직사회가 감당해야 할 심리적 충격은 컸다. 그리고 이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AI 바이러스는 전국을 강타했다.
실제 정부는 지난 12일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국무총리 주재로 AI차단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13일 0시부터 48시간 동안 전국의 가금류 관련 사람과 차량의 이동을 중지하는 스탠스틸(StandStill) 명령을 발령했다. 강제 명령을 통해 AI 확산을 차단하겠다는 의지였지만 지난 달 16일 충북 음성과 전남 해남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지 한 달이 다 돼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 타워가 작동한 것이니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그 사이 AI는 철새 이동경로인 '서해안벨트'를 따라 전국 곳곳으로 확산됐고, 살처분 규모는 1000만수를 넘어 가파른 확산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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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비슷한 시기 AI가 발생한 일본정부의 대응은 수준이 달랐다. 아베 총리를 정점으로 한 일본 정부는 지난 달 21일 아오모리현에서 AI가 발생한 지 2시간 만에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로 발령했다. 우리 정부가 AI 위기경보를 관심>주의>경계>심각 단계별로 대응하며 미적미적대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아베 총리는 관저에서 'AI 상황실'을 설치하고 현장 방역상황을 직접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정부의 늦장대응에 2100만수가 살처분된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살처분 규모가 80여만 마리에 그쳤다고 하니 AI대응 하나 만으로도 양국 정부의 실력은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개인이건 정부건 실력은 위기상황에서 발휘된다.
후세들은 2016년 대한민국을 과연 어떻게 기록할까. '촛불' '최순실게이트' '탄핵' 등은 주요 키워드가 될 것이고, AI사태와 같은 사회현상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가가 뒤따를 것이다. 이번 AI 사태가 제2의 재앙으로 번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의 국정공백은 안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