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진 4월 봄꽃, 4.3-세월호 화석된 슬픔

흐드러진 4월 봄꽃, 4.3-세월호 화석된 슬픔

배성민 기자
2018.04.14 06:29

[팔진도]가해자 참회 없이 피해자의 절규만 남아…

사진 왼쪽 두번째가 '화산도'의 김석범 작가, 세번째는 '순이삼촌'의 현기영 작가
사진 왼쪽 두번째가 '화산도'의 김석범 작가, 세번째는 '순이삼촌'의 현기영 작가

‘슬픔과 좌절, 분노는 화석이 됐다. 눈물도 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또 울고 있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뿌옇던 하늘에 추적추적 밤비까지 내린 지난 6일. 광화문광장의 한켠 건물에서는 300여명의 사람이 두 노신사의 입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제주 4.3의 비극을 소설 ‘까마귀’ 등으로 그려낸 재일 조선인 김석범 작가와 국내 최초로 4.3을 문학적 소재로 삼은 소설 ‘순이 삼촌’을 쓴 현기영 작가가 나란히 앉아 있는 연단.

강연회가 끝난뒤 밤늦게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청중들이 빠져나가는 곳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민간인 불법 사찰 피해자 김종익씨였다. 그는 전 정부 당시 실세와 동향이고 MB정부를 희화화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려놓았다는 이유 등으로 신상을 털린 끝에 재직하고 있던 회사(당시 KB한마음) 대표직에서도 쫓겨나고 소유주식도 강제 이전당했다. 군대에 간 아들과 가족, 지인들도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었다. 법원을 통해 무고함을 증명(2016년 4월 대법원은 불법사찰 피해를 입은 김종익씨와 가족에게 국가와 해당 공무원들이 배상하라고 판결)받는데 몇 년이 걸렸다.

송사에만 주로 등장하던 그의 소식이 간간히 전해진 곳은 서점가였다. 한학과 번역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일제 하에서 필리핀, 타이 등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던 조선인 전범과 관련된 몇권의 책을 내면서 역자로 등장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듯 국가권력에 의해 어지럽혀진 개인의 삶에 천착했던 것.

명함을 교환한 그에게 며칠 뒤 전화를 걸었다. 4.3과 어떤 인연이 있어 행사에 참석했냐는 질문에 그는 “화산도의 속편격인 김석범 선생의 ‘해저에서’라는 소설을 낭독.번역하는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다”며 “김 선생에게 여쭤보고 싶은게 있어서 갔었다”고 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최근 민간인(김종익씨 등) 사찰을 실행한 하급 공무원 등만 처벌했을 뿐 청와대 등 힘 있는 '윗선'의 개입은 밝히지 못한 것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해당 내용에 대해 묻자 그는 “서류 정비 등 준비는 하고 있지만 중요한 사건들이 워낙 많을텐데 제 사건 차례까지 오려면 시간이 걸리지 않겠어요?”라고 되물었다.

이명박(MB) 정부의 최대 피해자 중 한명인 만큼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MB구속에 대한 소회로 넘어갔다. ‘구속장면이 담긴 방송화면을 못 보고 전해들었다’면서 그는 사람을 대한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에둘러 답했다. 범죄자도 사회적인 보호를 받아야 할 개인이라고, 그들의 인권이 보장받지 못 하면 우리들의 인권도 보호받기 어려울 거라고.

이내 책 이야기로 돌아왔다. 전범으로 비난받고 국가도 제대로 돌봐주지 않는, 헝클어진 개인일지라도 자기가 저지른 일(포로감시원으로 연합국 포로에 대한 학대 등)에 대한 참회가 먼저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씨(전 KB한마음 대표). 사진은 2011년 당시 한 모임에서의 모습
이명박 정부 시절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씨(전 KB한마음 대표). 사진은 2011년 당시 한 모임에서의 모습

통화한 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사법처리는 ‘무술옥사’라며 정치적 희생양임을강조했다. 제주 인구의 10%인 2만5000~3만 명의 주민이 희생된 4.3에 대해서도 정치적 진영에 따라 폭동이냐, 항쟁이냐 여전한 평행선이다. 먹먹한 마음이었다. 광화문 광장에는 여전히 세월호의 상징인 노란 리본이 있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 기획전이 국가기관 차원의 전시로는 사실상 처음 열리고 있다. 아직 가해자의 참회는 없다. 피해자의 절규만이 넘쳐난다. 눈물은 말라가지만 분노와 슬픔은 화석이 되었다. 흐드러진 봄꽃도 조금씩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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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민 논설위원

안녕하세요. 머니투데이 배성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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