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세청은 상품의 수출입을 통제하는 기관이다 보니 경제주체인 기업들과 항상 접촉할 수밖에 없다. 취임 이후 지방세관을 다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업인들과 만나 경제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직접 듣고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노력했다. 나아가 지방 세관장들에게도 청탁금지법을 핑계로 사무실에만 있지 말고 기업들을 방문해 어려움을 직접 파악해 달라고 항상 강조한다.
그런데 청장인 필자가 기업간담회를 하면 직원들이 미리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파악해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지를 보고서로 작성해 준다. 그러다 보니 막상 간담회는 이미 정리된 내용을 확인하고 사진만 찍어 보도자료를 내는 형식적인 자리가 되고 만다. 처음 몇 번은 그러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간담회를 시작하면서 이미 애로사항이라고 건의한 내용을 다 알고 있고 적정한 조치를 취할 테니 그것 말고 진짜 이야기를 해보자고 말을 꺼낸다.
기존 제도나 법을 전제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관세청의 업무 범위인가도 신경쓰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정부기관의 업무분장을 기업들이 왜 신경쓰는가. 다른 기관의 업무라면 전달하겠다는 말도 전한다. 관세청이 잘하고 있다는 말은 안 해도 된다. 기업을 하는데 정부가 이런 것은 꼭 좀 해결해줬으면 하는 것들과 관세청이 안 해주는 것들을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런저런 부탁에도 막상 간담회를 진행하면 역시나 미리 준비한 발언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들 상대방을 너무 배려하는 것 같다. 비록 필자가 아무 이야기라도 다 듣겠다고 했는데도 대부분 필자가 처리할 수 있는 수준에서 발언한다. 관세청이 정책기관이 아니라 집행기관이라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이런 점에서는 정부기관을 책임지는 한 사람으로서 답답함도 느끼는 반면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국가기관에서 얼마나 안 들어줬으면 지레 한계를 설정해버리는지.
기업에서는 이런 기회에 무슨 주장이든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정책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입장의 충돌이 있게 마련이므로 개별 기업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도 많다. 그렇지만 기업 입장에서 주장은 마음껏 해야 한다. 혹시라도 정책담당자가 다른 시각에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취임 초기 간담회에서 많이 나온 문제가 보세공장의 관리를 완화해 달라는 문제였다. 보세공장은 그 공장을 보세구역, 즉 관세가 유예되는 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수입 원자재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한 다음 수출을 한다면 원자재 수입 시 관세를 내지 않아도 돼 자금운용의 편의가 있는 제도다. 보세공장에 반입된 원자재를 연구 등을 필요로 공장 외로 반출하려면 일일이 관세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최근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일환으로 관세청에서는 보세공장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수입화물 자체를 100% 검사하지 않는데 보세구역에 반입되었다가 재수출되는 원자재를 100% 관리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다.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하던 기업의 주장이 현재는 받아들일 가능성이 많아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업 간담회를 형식적인 자리여서는 안 된다. 모처럼 만나는 정책결정자에게 기업이 원하는 다양한 주장을 과감히 할 수 있는 자리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