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각 국가들이 전례 없이 강력한 경제 제재를 시행하면서 거래 상대방에 대한 신용 위험인 카운터파티 리스크가 심화하고 있다. 미국과 유로존 은행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예치금에 대한 지급을 거부하자 러시아 정부채가 부도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역시 서방 은행들이 러시아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시키자 러시아와 거래 중인 기업과 금융기관이 거래대금을 받을 길이 막막해지고 있다. 이에 더해 러시아가 천연가스 수출 대금을 루블화로 지급받겠다고 하자 G7 국가들이 이를 거부하면서 천연가스의 수입이 막힐 수도 있게 되었다.
이러한 카운터파티 리스크는 거래의 안정성을 위협해 국제교역에서 비용 상승을 견인한다. 국제 원유가는 2008년 이래 최고치로 올랐고 천연가스와 곡물을 비롯한 각종 원자재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에서 시간이 갈수록 인플레이션이 악화하고 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은 생활 물가를 올려 서민 생활을 압박할 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에서 카운터파티 리스크를 더 높이기도 한다. 미국을 포함한 선진 금융시스템에서 헤지펀드를 비롯한 투자회사는 Repo시장에서 국채를 담보로 각종 투자에 사용할 돈을 은행에서 차입한다.
문제는 이들 헤지펀드가 Repo 거래에 담보로 제공할 국채를 프라이머리 딜러와 같은 대형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다는 사실이다. 헤지펀드에게 국채를 빌려준 프라이머리 딜러도 종종 그 국채를 여타 보험회사로부터 빌려 오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헤지펀드에게 돈을 빌려주기 위해 담보로 국채를 건네받은 대출은행이 그 국채를 다른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렇게 담보가 이중 삼중으로, 심지어는 수십 회까지 중복 사용되는 것을 중복 담보 제공(rehypothecation)이라 한다.
이렇게 담보가 중복 사용된 어느 한 환매조건부채권( Repo )거래에서 부도가 발생할 경우, 그 담보를 연쇄적으로 제공한 모든 금융기관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우선 Repo 시장에서 헤지펀드 등 상대방 금융회사에 대한 카운터파티 리스크를 증대시켜 여신을 감소시킨다.
게다가 금융시장 전반적으로 거래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어 유동성 흐름에 경색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자 Repo 시장에서의 부도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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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채권 수익률이 오르면서 채권 가격이 크게 하락했고 이로 인해 채권에 투자하는 헤지펀드의 유동성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헤지펀드가 보유한 주식-가상화폐 등 기타 투자자산의 매물이 터져 나올 경우 시장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연준이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더해 조만간 양적긴축(QT)까지 시행할 경우 시중 유동성 경색은 한층 더 빨라질 전망이다. 연준이 보유 채권의 규모를 줄일 경우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대형 은행이 이 채권을 흡수하면서 헤지펀드에 대한 대출도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동성 경색은 미국 금융시장을 붕괴시키고 이머징 마켓으로 신속하게 퍼져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연준의 강력한 긴축 스탠스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 주식시장이 인상적인 회복세를 보였다. 이는 그간 연준의 양적완화(QE)와 Repo 시장에서 담보의 중복 제공으로 인해 늘어난 시중 유동성이 얼마나 풍부한 상태에 있는지 역으로 보여준다.
연준으로서는 풍부한 유동성을 흡수하고 주식시장을 냉각시켜 국내 수요를 줄이려 할 수밖에 없다. 금리인상이 경기침체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연준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양적긴축을 시행하는 이유다. 문제는 이로 인해 카운터파티 리스크가 극대화하면서 금융시스템이 붕괴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