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연말이다. 우리는 벌써 과거를 잊어가고 있지만 지난 2년간 집합금지명령으로 송년모임을 하지 못했다. 몇 달 전부터 허용된 사적 모임 덕에 만나지 못하던 친구들을 만나고 안부를 묻는 송년회가 이어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오랜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가 항상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주식과 부동산, 재테크 얘기를 하는 것도 지겹지만 정말 피하고 싶은 주제는 따로 있다. 바로 정치 이야기다. 정치에 과몰입하는 친구가 한 명만 모임에 끼어도 그 자리는 과열되기 마련이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어떤 정치인과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그 사람의 본모습에 대해 얼마나 설명해주는지도 잘 모르겠다. 진보적인 정치관을 가진 자가 일상에서는 충분히 보수적이고, 반대로 보수적인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는 자가 더 진보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토론의 태도가 아닌가 싶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지나치게 큰 목소리로 주장하며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거나 반대의견을 제압하려는 모습을 보면 그 자리를 피하고만 싶어진다. 종종 큰 목소리로 떠드는 자의 견해가 무비판적으로 어떤 무리의 견해를 추종하는 습속에서 비롯된 것을 확인하게 되면 말들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도 생각하게 된다.
술자리의 정치토론을 피하고 싶은 더 큰 이유는 대부분 토론이 지극히 소모적이고 감정적인 것들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반대의견을 가진 자를 편견에 사로잡힌 자로 낙인찍거나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무능을 나열하는 언사들이 토론 중에 반드시 등장한다. 대화가 과열돼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2찍들'(지난 대선에서 무지성으로 2번을 찍은 유권자들) 같은 소리를 육성으로 듣는 것은 곤혹스럽다.
일상적인 정치토론에서 가장 의아한 부분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나 정책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 개인의 도덕적 흠결을 두고 상대 진영을 깎아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유권자로서 우리에겐 정치의 투입(정치인)이 아닌 산출물(정치인이 입안하는 법안)이 더 중요한 것인데 무언가 전도된 현실이 우리의 일상적 토론마저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그 연원이 따로 있다고 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상적인 정치언어는 기성 정치인들이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들에서 나온 경우가 많다. 국회는 언젠가부터 협상과 토론이 불가능한 곳이 돼버렸다. 그것을 반영하듯 2023년도 예산안은 지금까지도 합의처리되지 못하고 있는데 2014년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이래 정기국회 동안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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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바로 그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상대방을 토론과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박멸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사모임에서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갖는 친구를 적대시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나는 극단적인 견해를 갖는 친구와의 정치토론을 꺼리게 됐다. 모임에선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낀 이야기, 일과 취미에 관한 살아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좋다. 그래서 정치 과몰입 친구들과 무언가 많은 말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피곤하고 불쾌하다. 그들이 건강한 정치토론을 하고자 한다면 같은 지지정당을 갖고 정치적 견해를 보유한 자들을 스스로 찾아갔으면 좋겠다. 좀 더 시간이 있다면 당적을 갖거나 지역 정치인과 함께하는 것이 공익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시민들의 자발적 정치토론이나 정치적 관심사를 일상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문화가 일상에 침투하는 것이 불편하고 일상은 정치보다 좀 더 풍요로운 것들로 채워지는 것이 모두에게 더 좋겠다는 바람일 뿐이다. 새해엔 우리 모두가 정치와는 조금 거리를 두고 친구들과는 더욱 가까워지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