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논란이 들끓었다.미국에서 보조금을 받고 전기차를 판매하려면 전기차를 미국에서 조립해야 하며,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필수 소재를 조달하려면 미국을 포함한 동맹국, 다시 말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서 채굴됐거나 재활용된 소재만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지난해 8월 IRA 발효 이후 국산 전기차 판매량은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차 아이오닉5는 IRA가 시행된 이후 8~11월 월평균 판매량이 1398대로 직전 4~7월(2357대)에 비해 60%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2023년부터다. 경기침체·고금리 여파로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전기차 시장 자체가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의 보급형 전기차를 사려는 미국 소비자층은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보조금이 제외돼 고금리로 안 그래도 비싼 전기차를 살 이유가 더더욱 적어지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대출을 받아 운용하는 리스 구매가 많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남다른 상품성으로 IRA 공세에도 판매량을 어느 정도 유지했지만 시장 자체가 작아지면 대응할 카드가 많지 않다. 그 와중에 한국 뿐 아니라 유럽연합(EU)에서도 IRA의 불합리한 측면을 항의했지만 '미국산(Made in USA)' 원칙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동차는 현재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축이고, 전기차 등 친환경차는 한국의 미래 먹거리다.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온 경기침체가 이 둘 모두를 위협하고 있다. 이미 자동차 수출엔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자동차 수출은 2015년 297만대에서 2021년엔 204만대로 무려 93만대가 줄었다. 2022년도 비슷한 추세일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지만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의회는 자국 경제가 먼저지 한국산 전기차엔 관심이 없는 게 당연하다. 호혜 평등 원칙에 따라 거래하던 무역 관행은 '힘 vs 힘'으로 넘어갔다. IRA가 불합리하다고 외쳐봐야 되돌아오는 건 공허함 뿐이다. 상황이 더 복잡해진 만큼 한국 정부가 더 발 빠르게 외교전을 펼쳐야 하는 이유다.
상황을 급반전시킬만한 뾰족한 수는 사실 없다. 다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우선 리튬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배터리 소재의 대체 국가를 찾아야 한다. 현대차 조지아 공장 등 미국 현지 공장 완공도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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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의 허점도 이용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 정부가 상업용 친환경차 세액 공제의 적용 범위를 넓혀달라고 요청했던 게 좋은 예다. 현 IRA 규정으론 아이오닉5를 개인이 구매하면 보조금이 없지만 택시·렌터카로 쓰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우버·리프트 등 자가용 승차공유에 활용되는 차도 상업용에 넣어달라는 요구다. 지난해 12월말 미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세액 공제 혜택을 받는 아이오닉5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당연하게도 감정적인 보복성 무역 장벽을 세우는 일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중국도 마찬가지다. IRA와 경기침체라는 위기를 동시에 맞은 한국 정부와 완성차 업계가 슬기롭게 극복하고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선두주자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