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상천하 유아독존.' 붓다가 태어나 외쳤다는 유명한 말이다. 하늘 위나 아래에서 나 홀로 존귀하다는 말인데 모든 존재는 스스로 존귀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엇이 존귀한 것일까. 붓다가 출생한 가문이 존귀한 것인가, 아니면 그의 빛나는 외모가 존귀한가, 혹은 그가 지닌 재물이 존귀한 것인가. 그를 존귀하게 만든 것은 그의 출생 자체가 아니라 그가 출생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걸어간 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 존귀한가 그것 역시 그의 가문이나 권력이 아니라 그가 어떤 생각과 태도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일 것이다. 며칠 전 한 여고생이 다리에서 투신하려는 40대 남성의 두 다리를 붙잡고 제발 죽지 말라고 외치며 119 신고로 구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녀의 일화를 보며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그 존귀한 여고생은 존귀한 하나의 생명을 살렸다. 그리고는 인터뷰에서 아저씨가 어떤 마음에 아픔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잘 극복하셨으면 좋겠다는 따스한 말을 했다. 그녀의 존귀한 마음에 예배합니다.
가끔 TV나 각종 미디어를 보면 화려한 재화를 광고하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드라마나 영화들에서도 재물을 가짐으로써 누리는 삶의 화려함을 과장해서 보여준다. 그런 것들에 노출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런 속에서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려주는 교육도 하지 않는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기필코 얻어야 한다고 채찍질할 뿐이다. 이 사회 전체가 한 달에 1000여명에 달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세상의 모든 재물은 그저 인연 따라 돌고 돌 뿐이다. 그것들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을 지닌 사람도, 좇아가는 사람도, 좇으라 재촉하는 사람들도 모두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 신앙의 대상에 회개하고 참회하지만 근원적으로는 그 참회의 주체와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 돼야 한다. 자연인 자기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욕심에 미치지 못해 자신을 탓하고 원망하며 나아가서는 세상도 원망한다. 그것은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욕심은 계속 변화하고 나타났다 사라졌다 도깨비와 같다. 그런 것들에 현혹돼 자신을 탓하지 말고 그런 것들에 현혹됨을 탓하는 것이 옳다. 모든 존재는 있는 그대로 존귀하다.
부처님오신날에 등을 밝히는 상징적인 이유는 마음을 밝히라는 데 있다. 명심견성(明心見性), 마음을 밝히면 그 본래 성품이 부처라는 말이다. 마음속에 이것저것 많이 담아두면 밝아지지 못한다. 옳고 그름, 좋고 싫음,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을 마음속에 가득 담아두면 삶이 무겁고 어둡다.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저절로 마음이 밝아져 스스로 존귀한 존재가 된다. 그것은 애써서 구하거나 좇아가서 얻는 것이 아닌 최상의 행복이다. 그런 속에서 자유롭게 무엇이든 얻고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마음에 굴림을 당할 것인가, 마음을 굴릴 것인가. 80 평생을 살아도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마음에 굴림을 당하고 산다면 어른 노릇하기 힘들고 20년을 살았다 해도 외부 경계에 지나치게 현혹됨이 없이 평온한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가 있다면 스승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마땅히 가까이 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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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는 외양으로 세상을 살아가더라도 화려하게 치장한 이나 대단한 권력을 지닌 상대를 투명한 눈으로 마주하는 떳떳한 사람은 그런 외양을 뽐내려 하거나 그런 것들로 사람을 평가하려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런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연을 원망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뿐이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 존귀함인지 아는 사람이다.
신분이나 권력,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자신이나 남을 평가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삼는다면 비굴해지거나 초라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과 모든 존재의 존귀함을 스스로 증명한다( 혜원 구리 신행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