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엊그제 어느 대학에 가보니 졸업식이 열린 듯했다. 교문에 '○○○회 전기 학위수여식'이라는 현수막이 걸렸고 그 앞에는 꽃다발을 파는 임시노점이 줄지어 있었다. 멋진 가운을 입은 학생들은 부모님, 친구들과 함께 학교 곳곳을 다니며 추억을 남기고 있었다.
'졸업'(卒業)은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소정의 과정을 마쳤다는 의미지만 한자의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일을 끝냈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일'(業)은 주로 학업을 뜻했다. 조선 숙종 때 이조참판과 대사헌을 지낸 이현일(1627~1704년)은 형의 소상(小祥)을 치르며 '길이 은혜를 입어 하늘이 도와주신다면 남은 생애 동안에라도 뜻을 이어받아 졸업하고자 합니다'란 제문을 지었다. '뜻을 이어 일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형의 학문을 계승해 완성하겠다는 다짐을 말한 것이다. 또한 성리학자 한원진(1682~1751년)은 스승 권상하를 기리며 '젊은 시절 동춘(東春·송준길)의 문하로 들어가 화양(華陽·송시열)에게서 졸업하셨다'고 했으니 이 역시 같은 의미다.
'졸업'이 '학업을 마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상당히 오래됐다. '한서'(漢書) '유림전'(儒林傳)에 '시수는 어린 시절 동자로서 전왕손(田王孫)에게 주역(易)을 배웠는데 훗날 장릉(長陵)으로 이사한 뒤 전왕손이 박사가 되자 다시 찾아가 졸업했다'고 기록돼 있다. '한 학자로부터 학문을 전수받았다'는 의미니 오늘날의 졸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제(北齊)의 학자 안지추는 '안씨가훈'(顔氏家訓)에서 '양(梁)나라는 황손 이하 아이들을 먼저 학교에 입학하게 해 그 뜻을 살펴보고 벼슬에 오른 이후로도 문사에 종사하게 했으나 졸업한 이는 드물었다'고 했다. 예부터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음을 알 수 있으니 여기서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학위논문에 고심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대학 졸업식은 여전히 중요한 행사지만 예전 같은 잔치 분위기는 많이 사라진 듯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실내에서 진행되는 학위수여식에 참석하는 졸업생이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 졸업식 당일 학교에 모였다. 그 때문에 학교 주변은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었고 평소 비싼 가격 탓에 한산하던 학교 주변의 숯불가든들도 그날만큼은 인산인해를 이루며 대기줄이 길게 늘어섰다. 또한 일가친척뿐 아니라 직장동료들까지 참석해 졸업을 축하해줬다. 그러나 이제는 북적거리는 분위기가 사라졌다. 졸업식 당일을 피해 전후로 찾아와 조용히 사진만 찍고 가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한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 졸업자의 34.5%가 아르바이트부터 찾겠다고 했다고 한다. 또 올해 채용계획이 있는 580여개 기업 중 70%가 경력직 수시채용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청년층은 줄어드는데 일자리를 잡지 못한 청년의 수는 늘고 있다. 대학 졸업식의 변화는 대학이 갖는 의미나 사회 분위기 탓도 있지만 졸업자들에게 당면한 현실 역시 큰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요즘 졸업식 풍경은 영화 '졸업'(The Graduate·1967년)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버스에 올라탄 벤과 일레인의 미소가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바뀌는 그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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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졸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정작 중국에선 졸업보다 '필업'(畢業)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는 듯하다. 역시 '일을 마쳤다'는 뜻이다. 반면 졸업을 뜻하는 영어단어 graduate는 라틴어 gradus(단계·등급)에서 유래한 단어, 학업을 마치고 한 단계 위로 올라간다는 의미가 있다.
얼음이 녹고 싹이 움트는 계절이다. 졸업생 모두가 이제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 '한 단계 위로' 도약하기를 희망한다. 새봄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기를, '학생부군'(學生府君)의 일원으로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