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오면 꽃이 핀다는 것은 세 살 먹은 아이도 알겠지만 새삼스레 봄이다, 꽃이다 호들갑 떠는 것은 생각과 오랜 경험 속의 느낌을 상회하는 생동하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잠들어 죽은 것 같은 고목나무에서도 새잎이 돋아나고 찬바람 속에 작은 온기라도 한 올 붙들어 매화는 꽃봉오리를 말아낸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우리 지구의 환경과 생명은 점점 신비로워진다. 광활한 우주의 작은 먼지와 같은 지구에서 이렇게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것을 섬세하게 인지하는 인류의 진화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우리 인간의 세상은 관념이 지배하는 곳이라 의미를 부여함에 따라 우주적 가치를 담기도 하지만 한때의 재난에 의해 허무하게 사라져버릴 정도로 연약하기도 하다. 인간의 삶은 변화무쌍하고 영원하지 않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신비롭고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까. 붓다는 우리 모두가 부처의 성품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왜 사람들은 알지 못할까.
사미계를 받고 암자에서 기도할 때였다. 기도만 하면 이 생각 저 생각이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생각에 묻히는 것을 혼침이라 경계하기도 하지만 어느새 빠져드는 것이 의식의 흐름이다. 그러다 감정과 섞인 기억들을 툭 건드릴 때면 분노와 슬픔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 마음들을 둘러보다 보면 나 자신을 향한 분노와 원망에 절로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몸서리친다.
지금까지 내가 나를 위해 살았다고 여겼지만 실상은 뜬구름 같은 욕망에 나를 괴롭히고 원망하며 살았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난생처음 나와 마주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신이나 부처에게 기도하고 참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참회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내가 나를 연민과 자비의 마음으로 용서하고 다독거린다. 괜찮다. 괜찮다.
밖을 향한 모든 관심과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은 실상 내가 나에게 바라는 관심과 사랑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치유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기도의 한 영험일 것이다. 그런 때에 우리 마음엔 봄이 오고 꽃이 핀다. 봄을 맞아 세상 모든 이의 마음에도 꽃이 피길 발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봄은 보고 또 봐도 새롭고 소중하다.
백양사엔 고불매란 이름이 붙은 350년 된 매화나무가 있다. 그 매화꽃을 보고 지은 시가 있다.
'고불매'(古佛梅) 300년 피워올린 향기/ 겸손도 하시어 새것이요/ 지쳐 쉴 만도 할 것이나/ 부끄럼만 망울망울/ 고불 찾던 저 나그네/ 불매 아래 부처 떨구네.
300년 넘은 고목이지만 그 고목 위에 매해 새로운 꽃을 피운다. 그 머물지 않는 겸손함에 매화향은 더욱 기품 있게 우러난다. 사람들은 부처를 찾아 한세월 방황하며 찾아 헤매지만 모두 관념으로 지어낸 구덩이다. 그 구덩이에 빠져 묻혀가는 것도 하나의 삶인 것이다. 세상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도 그와 같다. 한 세월 몸부림치다가 스러져가는 것이다. 비참한 듯하지만 그것 역시 신비로운 생명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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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무엇일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가치와 역할도 변하기 마련이지만 삶에 지친 나그네가 잠시 기대어 치유하고 쉬었다 가는 바윗돌과 같은 것이면 좋겠다.
필요 이상의 과도한 세력과 규모는 본래 목적을 지나친 것이다. 나무보다 꽃이 더 커지려 애쓰는 것과 같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거대한 꽃에 이끌리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각자 근기와 인연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 이 세상이다.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또한 얻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나. 이 계절에 다시 매화를 본다. 지난 아픔과 슬픔은 고목을 고목이게 하는 비틀림이지만 그 위에 어김없이 꽃은 새롭게 피어난다. 나무는 부처도 깨달음도 구하지 않는다.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머리도 비우고 마음도 비우고 모두 한 송이 꽃이 된다.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