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7년 3월30일은 미국이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매입한 날이다. 1853년부터 1856년까지 오스만제국, 프랑스, 영국 등의 동맹군과 싸운 크림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재정난이 심각했다. 알래스카 통치에만 매년 20만달러가 필요했는데 돈이 없었다. 그냥 있다가는 아무런 보상도 없이 영국에 빼앗길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 알래스카를 팔기로 했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주미 러시아 공사 에두아르트 스테클에게 협상을 지시했다. 미국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와 스테클은 밤샘협상 끝에 1867년 3월30일 새벽 4시에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북미 북서쪽 끝에 있는 58만6412제곱마일(150만㎢)을 720만달러, 즉 에이커(약 1224평)당 약 2센트에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미국의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언론과 의회는 "수어드의 바보짓"(Seward's Folly), 또는 "수어드의 얼음창고"(Seward's Icebox)라며 "쓸모없는 땅을 비싼 돈에 샀다"고 비난했다. 미국 상원은 4월9일 37대2로 매수조약을 승인했고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5월28일 조약에 서명했다. 그러나 하원은 강력히 반대했다. 하원의원 새디어스 스티븐스는 "이건 밤중에 이뤄진 암거래다! 720만달러를 헛되게 빙하 땅에 쓰느니 차라리 남북전쟁 희생자 유가족에게 주자"고 했다. 벤저민 F 론 의원은 "북극곰의 정원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땅에서 자랄 수 있는 유일한 작물은 '얼음'일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렇게 1년 이상 끌다 결국 1868년 7월 113대48로 승인됐다.
그러나 상원 외교위원장 찰스 섬너는 적극 찬성했다. 그는 상원 연설에서 "알래스카는 태평양 진출의 교두보다. 영국의 캐나다 확장을 차단할 전략적 요충지"라는 말을 4시간 동안 23차례나 반복했다. 또 전 재무장관 로버트 J 워커는 "알래스카에는 해양자원(고래·물개)과 광물자원의 잠재력이 있다. 50년 내 투자수익을 회수할 것"이라고 했다. 협상 책임자 수어드 국무장관은 "알래스카는 북미대륙 전체를 지배하는 '가시적 첫걸음'"이라고 했다. 또 그는 비판자들에게 "현세대는 우리를 비웃겠지만 미래 세대는 이 거래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암살되는 바람에 부통령에서 대통령직을 맡은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알래스카 매입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남북전쟁(1865년 종전) 직후 "영토확장으로 국가통합을 재확인하자"는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1867년 3월30일 러시아와 수어드 국무장관의 극비협상 후 즉각 조인을 지시했다. 의회에는 "알래스카 획득은 미국의 영구적 이익을 위한 것이다. 태평양 시대를 열어줄 문"이라는 서한을 보냈다.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 작업의 숨은 공로자는 또 있다. 당시 유명한 자연학자로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의 초대 큐레이터이며 부회장이었던 스펜서 플러턴 베어드다. 그는 대통령과 수어드 국무장관의 결정에 중요한 과학적, 경제적 근거를 제공했다. 베어드는 스미스소니언에서 알래스카 천연자원을 연구하기 위해 탐험대를 조직하고 지원했다. 특히 1865년부터 1867년까지 '로버트 케니콧' 탐험대는 알래스카의 동식물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했다. 베어드는 알래스카의 풍부한 생물 다양성과 자원 잠재력에 관한 종합보고서를 작성했다. 그의 보고서는 대중의 인식과 정책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어업, 모피거래 및 기타 천연자원의 경제적 가능성을 강조해 미국 정부의 알래스카 관리 및 투자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알래스카산 생선 통조림의 가치만 1년에 5620만달러, 매입가격의 약 8배다. 1938년 금 생산량은 약 1850만달러나 됐다. 또 미국에서 필요한 모든 주석을 공급하고 석탄은 세계 4위, 구리, 백금, 석유, 철 등 광물이 어마어마하다. 현재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대강당 이름은 '베어드강당'(Baird Auditorium)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