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인공지능과 보이는 것의 시대

[청계광장]인공지능과 보이는 것의 시대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2025.06.02 02:05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새로운 시대는 사람들이 그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도래한다. 얼마 전 갑자기 모바일 메신저와 SNS가 지브리(Gibli) 이미지로 도배됐을 때 대부분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실감하지 않았을까. 인공지능이 강렬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년 전 알파고의 대국을 기억할 것이다. 모두 바둑은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기계는 절대로 그것을 다 익힐 수 없다고 믿었지만 알파고가 보여준 날카로운 수싸움에 우리는 오랜 신념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알파고 이전 1770년대 즈음 유럽엔 '터키인'으로 불리는 '체스 두는 기계'가 있었다. 헝가리 왕국의 발명가였던 켐펠렌이 만든 그 기계는 유럽 각국을 돌며 시합을 할 정도로 주목받았다. 도전자 중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벤저민 프랭클린 같은 유명 인사가 포함됐다는데 결과는 항상 기계의 승리였다. '터키인'은 켐펠렌이 죽은 후에도 약 84년간 경의와 놀라움의 대상이 됐지만 사실 그것은 희대의 사기에 불과했다. '터키인'은 난쟁이 체스 고수가 숨어서 조작하는 기계였던 것이다.

그런데 '터키인'은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을 속일 수 있었을까. 대국 전에 기계를 열어 살펴보게 하는 흔한 마술쇼 같은 제스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당시 막 태동한 산업혁명과 기술혁신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기계기술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기에 오히려 대중은 그런 놀라운 발명이 충분히 있을 법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다른 가설도 있다. 생각하는 기계의 신뢰도를 높인 또다른 능력을 다룬 기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켐펠렌은 체스 기계뿐 아니라 '말하는 기계'도 함께 선보였는데 전자가 완전한 가짜였다면 후자는 비교적 성공한 발명이었다. 아코디언 같은 주름진 구조물에 공기를 통과시켜 나름 과학적으로 인간의 목구멍을 지나는 소리를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라틴어처럼 들렸다고도 하고 그냥 외국어 같았다고도 하니 결국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그저 '말처럼' 들리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던 듯하다. 결국 켐펠렌의 말하는 기계는 본질을 구현했다기보다 외양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말하는 기계'가 '생각하는 기계'의 신용에 기여했다는 사실은 여러 생각거리를 남긴다.

동서를 막론하고 인류사회는 외면보다 내면을 중시했다. 외모보다는 마음이, 감각적인 것보다는 그 의미가 더욱 본질에 가깝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겉보기뿐이라 취약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모호해서 불안하다. 근대에 등장해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치는 전인교육(全人敎育)은 이런 이원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력만큼이나 중요한 체력을 키우기 위한 운동뿐 아니라 따라 읽고, 따라 쓰고, 따라 움직이게 하는 반복학습의 모델이 확립됐다.

행위의 반복은 실질적인 대응지식뿐 아니라 응용적 사고와 판단력을 키워준다. 알파고나 챗GPT가 켐펠렌의 말하는 기계와 연결된다면, 외적 모방과 반복이 지각 가능한 경우의 수의 통계와 계산 그리고 그것의 학습과 추론 등으로 발전하는 인류의 지적 모델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인공지능은 지성을 넘어 감정, 그리고 창의성에까지 도전하지만 모방으로부터 벗어날 때 발현되는 창의력에선 여전히 우리가 유리하다. 오히려 위협은 감각적인 것을 생산하는 속도와 양에 있다. SNS에 지브리 이미지가 도배된 그날처럼 우리의 개성은 한순간에 진부한 것으로 변할 수 있다.

감각은 오래된 신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현혹하기도 한다. 켐펠렌의 관중 중 누군가가 라틴어를 알았다면 '말하는 기계'는 그들을 속이지 못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