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과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수업을 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알베르 카뮈의 산문집 '결혼·여름'을 주제도서로 정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제 여름이니까. 학생들이 책의 내용이 예상과 달라 당혹스러웠다며 운을 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카뮈의 이 책은 제목만 봐서는 젊은 남녀가 결혼해서 지중해의 찬란한 여름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로맨틱한 내용일 것만 같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펼쳐보면 '결혼'은 자연과의 결혼이고 '여름'은 주로 태양과 바다에 대한 묘사와 예찬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한 실존주의자가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자연 안에서 탐구한 기록이다.
이 책을 주제도서로 정한 이유가 사실 여기에 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제목이 자아내는 인상과 실제 내용의 불일치가 주는 당혹감을 경험케 하기 위함이다. 내가 가진 어느 출판사의 이 책 판본은 1998년 개정판 1쇄가 나왔고 2017년 개정판 15쇄를 찍었다. 그런데 모 출판사에서 2023년 8월에 출간한 판본은 2년이 채 되지 않아 17쇄를 찍었다. 같은 내용의 '결혼·여름'인데 20년에 걸쳐 15쇄를 찍은 책과 2년도 안돼 17쇄를 찍은 책은 뭐가 다를까. 후자의 디자인과 표지가 압도적으로 예쁘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책꾸'(책 표지 등을 꾸미는 것)를 한 것처럼 감성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은 '결혼·여름'이라는 제목과 함께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리기 좋은 일종의 팬시상품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예쁜 디자인과 낭만적인 제목에 끌려 책을 산 이들은 첫 몇 페이지를 읽다가 이내 학생들처럼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러고는 더 읽지 않거나 SNS에 책 사진을 예쁘게 찍어 올리고는 한쪽 구석으로 치워버릴지도 모른다. 책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내용은 좋은데 디자인이 예쁘지 않아 독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책, 내용은 별로인데 디자인이 예뻐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책, 예뻐서 사놓고는 내용은 안 읽는 책…. 이미지의 세계인 현대사회에서 책은 과연 그 내용에만 효용과 가치가 있을까. 책은 무형의 지식재산이라는 전통적 믿음이 여전히 유효하지는 않을 것이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것을 좋아하는 대중의 기호에 맞춰 책도 변해야 한다. 그렇다고 책이 내용과 무관하게 액세서리나 팬시상품처럼만 소비되는 것은 또 괜찮을까.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든다.
연애할 때 "내면을 본다"는 사람이 꽤 있다. 그런데 적어도 내 경험에서 그건 다 거짓말이다. 일단 예쁘고 멋있어야 한다. 절대적인 미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제 눈에 안경이라지 않나. 각자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겉모습이 있다. 내면을 보는 것도 우선은 그 겉에 이끌려 호기심이 생긴 다음의 일이다. 책이라고 다를까. 학생 대부분이 예쁜 디자인의 17쇄 판본을 들고왔다. 내용의 심오함이 그들을 당황하게 했지만 내용만으로는 절대 읽지 않았을 책을 학생들이 접하게 된 데는 출판사의 뛰어난 디자인 감각이 큰 역할을 했다. 어쨌든 손에 들고 있어야 한 문장이라도 읽는 것 아닌가. 책 전체를 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단 한 문장만이라도 마음에 새긴다면 그 책은 읽은 것이다. 책을 예쁘게 만든 출판사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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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도 마찬가지 아닐까. 누군가는 정치를 이미지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국민은 유능해 보이는 이미지, 서민친화적 이미지, 강직하고 정직한 이미지 등에 이끌려 지도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막상 내용을 들여다보니 부실하기 짝이 없거나 아예 다른 게 들어 있거나 텅 비어 있던 적이 얼마나 많았나. 이번 여름에 새로 출범한 '국민주권정부'는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기를, 외양의 디자인만큼이나 내실도 튼튼하기를, 어느 한 정책이라도 국민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기를 바랄 뿐이다. 정치는 SNS 과시용으로 소비되는 팬시상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