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8년 6월15일은 라슬로 비로가 헝가리 특허청에 볼펜에 대한 특허를 신청한 날이다. 당시 가장 인기 있는 필기구는 만년필이었다. 하지만 만년필은 잉크가 잘 번지고 튜브 밖으로 새기도 해서 골칫거리였다. 헝가리의 언론편집인이던 비로는 신문용 잉크가 만년필 잉크와 달리 빨리 마르고 번지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는 신문 잉크 정도의 점도를 가진 잉크를 쓰면 번짐이 적은 펜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년필에 신문용 잉크를 넣었는데 점도가 높아 펜촉까지 잉크 공급이 어려웠다. 그는 화학자인 동생 조르지 비로와 함께 펜 끝에 작은 구슬을 넣고 잉크가 그 구슬을 따라 회전하며 종이로 흘러나오게 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볼(ball)을 이용한 펜(point), 바로 '볼펜'(ballpoint pen)의 탄생이었다.
1938년 비로는 스위스와 프랑스에서도 국제특허를 등록했다. 그때는 독일의 나치, 헝가리 내 반유대주의가 퍼지고 있었다. 비로는 유고슬라비아의 휴양지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아르헨티나 대통령 아구스틴 페드로 후스토를 만났다. 후스토는 비로의 볼펜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에서 볼펜을 제조하는데 도움을 줬다. 유대인인 비로 형제는 1940년 아르헨티나로 망명했다. 이때 대통령 덕분에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1943년 후안 메이네의 자금투자로 '아르헨티나의 비로펜'(Biro Pens of Argentina)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최초의 볼펜 이름은 비로와 투자자 메이네의 이름을 합쳐 '비로메'(birome)라고 지었다. 지금도 아르헨티나에선 볼펜을 비로메라 부르고 비로라는 이름은 볼펜의 대명사로 쓰인다. 또 아르헨티나의 '발명가의 날'은 비로의 생일인 9월29일이다.
한편 2차 세계대전 중 영국 공군 조종사들에겐 골치 아픈 문제가 하나 있었다. 비행기가 고고도에 도달하면 온도가 낮아져서 만년필 잉크가 새거나 얼어버려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 그래서 영국 정부는 비로의 볼펜을 '비로'(Biro)라는 이름으로 3만 자루 이상을 조종사들에게 지급했다. 덕분에 영국, 호주, 아일랜드 등에선 비로가 볼펜의 일반명사가 됐다. 이 일로 볼펜의 상용화가 본격화했다. 한편 초기 특허문서나 상업적 설명에서 볼펜을 '볼포인트 만년필'(Ball-point fountain pen)이라고 부른 것도 재미 있다. 기존 만년필과 연관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볼펜 대중화의 주역은 프랑스 기업가 마르셀 비샤였다. 그는 이 기술에 관한 라이선스를 사서 개선한 뒤 1950년 유명한 'BiC 크리스털 모델'을 출시했다. 단순하고 싸고 안정적인 이 볼펜은 전 세계적으로 1000억개 이상 팔렸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하루에 1400만개가 판매된다.
독자들의 PICK!
볼펜은 펜 끝에 있는 작은 금속 볼이 회전하면서 내부 잉크를 종이 위에 고르게 전달하는 구조다.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이 과정에 금속공학, 유체역학, 화학공학 등 다양한 과학기술이 적용된다. 볼펜 끝의 볼은 주로 텅스텐카바이드, 스테인리스강, 황동 등으로 제작된다. 직경 0.5~1.2㎜ 수준의 초정밀 가공이 필요하다. 황동은 저가품으로 생각하지만 기술력이 있는 회사는 납이 들어간 연입황동을 썼다. 그러면 볼과 잉크의 점착도가 고르게 돼 볼펜의 잉크떡이 확실히 줄어든다. 그리고 초경합금인 텅스텐카바이드 같은 재질은 고도의 합금 및 제조기술이 필요하다. 그 중간단계인 스테인리스강도 제조가 쉽지 않다. 중국은 리커창 총리의 특별지시로 2011년 국가연구과제로 지정해 2017년에야 볼펜용 스테인리스강의 국산화가 시작됐다. 한국은 '모나미153'의 경우 1975년 황동의 국산화가 시작됐다. 한편 우주인들은 1968년 아폴로7호 때 개발된 미국의 '피셔(Fisher) 스페이스펜'을 쓴다. 이 볼펜은 무중력 상태, 물속, 기름 위, 영하 34도 등에서도 잘 써진다. 볼의 소재는 텅스텐카바이드다. 볼펜도 지퍼처럼 소소하지만 생활 속에 자리잡은 '세상을 바꾼 과학'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