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광복80년, 조선학술원을 기리며

[청계광장]광복80년, 조선학술원을 기리며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2025.08.25 02:05
중앙박물관 이태희 연구관
중앙박물관 이태희 연구관

중국 당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더러 20세기 전후의 중국 자료가 절실할 때가 있다. 고전은 쉽게 구할 수 있어도 이런 책들은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책 가운데 하나가 '신강방고록'(新疆訪古錄)이다.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발견된 골동수집 관련 서적으로 청나라 말기 신강포정사(新疆布政司)를 역임한 왕수남(1852~1936년)이 썼다. 청대 골동품 수집열풍과 고증학의 유행에 저명한 장서가 컬렉터가 등장했는데 왕수남이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신강방고록'은 그가 신장에서 근무하며 직접 수집하거나 관찰한 유물을 기록한 것으로 적지 않은 당나라 물건이 포함돼 있다. 오랫동안 여기저기서 이 책을 찾아봤는데 파랑새는 가까이 있다고 했던가. 몇 년 전 국립중앙도서관 누리집에서 원문 서비스하는 것을 확인했다.

책을 읽다 보니 책의 주인이 곳곳에 남긴 한자, 일본어, 영어 메모가 눈에 띄었다. 혹여 누구의 책일까 궁금해져 제일 앞 장으로 돌아가 보니 국립중앙도서관 장서인 외에 몇 개의 도장이 더 있었다. '대춘초당장서'(待春艸堂藏書)란 인장이 보여 확인해 보니 발해사 연구자로 경성제국대학 교수이자 도서관장을 역임한 도리야마 기이치다. 그리고 또 한쪽엔 '조선학술원장서지인'(朝鮮學術院藏書之印)이 있다.

조선학술원은 광복이 된 바로 다음날인 1945년 8월16일 경제학자 백남운이 주축이 돼 결성한 학술단체다. 백남운은 신문기사에서 창립 취지를 아래와 같이 말했다.

"조선학술원의 취지는 근본적으로 부과된 사명이 학술연구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국가 건설기를 당해 상아탑에 칩거하고 방관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오히려 무책임할 뿐 아니라 실천과 유리된 반동적 결과로 돌아가기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차제에 조선 민족으로서는 1인이라도 신국가의 건설적 위업에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학술원으로서는 각 방면의 전문학도와 지도적 기술자들을 집결해 우선 당면한 특수한 임무를 다하기 위해 대동적으로 매진하는 중이다."

물리학자 도상록, 화학자 김양하, 김택원, 천문학자 이원철, 수산학자 정문기, 식물학자 도봉섭, 공학자 김동일, 윤일중, 의사 윤일선, 경제학자 윤행중, 영문학자 이양하, 역사학자 이병도, 철학자 신남철 등 당시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지식인이 학술원의 기치 아래 모였다. 학술원은 조선총독부 산하의 학술 연구기관을 접수했다. 초대 국립박물관장 김재원은 회고록에서 백남운의 권유로 박물관을 접수했다고 했으니 국립박물관의 탄생과도 관련이 깊다 하겠다. 이런 발 빠른 작업 덕분에 박물관은 광복이 된 그해 12월 국립박물관으로 문을 열 수 있었다. 또한 당시 한국에 체재한 일인 학자들로부터 전적 및 학술서적을 구입, 수집했다. 부족한 학술인프라를 확충하는 한편 혹여 모를 우리 전적의 반출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신강방고록'은 그중 한 권으로 내가 지금 편히 볼 수 있었던 것은 옛날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조선학술원의 빛나는 시간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시대의 부침 속에 좌우로 나뉘고 남북으로 흩어지며 게다가 이어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조선학술원은 형해화됐다. 그러나 광복 직후 여러 분야의 석학이 모여 자신의 거취가 아닌 나라의 미래를 구상했다는 사실은 비록 순간이었을지라도 마음에 울림으로 남는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으로 여러 곳에서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펼쳐진다. 이맘때가 되면 늘 생각나 한 번씩 듣는 노래로 '귀국선'이 있다. 1947년에 발표된 이 곡은 나라를 잃고 각지를 떠돌던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며 느낀 벅찬 감동을 노래한 것으로 당시 감격의 분위기를 오롯이 전한다. 8월을 보내며 희망을 안고 새날을 꿈꾸며 건설을 다짐한 선학들도 들었을 그 노래를 다시 듣는다.

'칠성별아 빛나라 달빛도 흘러라, 귀국선 고동소리 건설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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