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선한가 악한가?

[청계광장]선한가 악한가?

혜원스님 구리 신행선원장
2025.09.15 02:05
혜원스님 구리 신행선원장
혜원스님 구리 신행선원장

인간의 타고난 성품이 선한지, 아니면 악한지에 대해 맹자와 순자는 상반된 견해를 주장했다. 전국시대 고자(告子)의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성무선악설도 있다. 기독교는 원죄설을 말하며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불교는 어떨까. 불교는 성무선악설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성공설(性空設), 즉 그 성품이 비었거나 무상해서 변하기 때문에 공성이라 본다. 현대 생물학적 지식을 토대로 본다면 "선하거나 악한 유전자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모든 생명은 선악을 떠나 생명 그 자체와 그것의 보전을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규정하는 선악이라는 것은 자연적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자연적으로 보면 살아남기 위한 행위가 집단적으로 보면 집단을 위협하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자연적인 생존본능이 종의 효율적인 보전을 위한 사회체계를 위협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의 관념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온갖 모순과 모순이 뒤섞여 무질서한 듯하지만 그 속에 어중간한 질서가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두통과 멀미를 앓으며 애써 구축해놓은 관념들을 스스로 부숴야 하는 일들을 겪으며 성장한다.

모순의 감옥에서 고통받고 방황하다 그것을 부수고 나와 깨달은 선사도 많았다. 오조 홍인대사에게 깨달음을 인가하는 가사와 발우(의발)를 받고 밤길을 도와 대중의 위협을 피해 남으로 도주하던 혜능은 대유령에 이르러 뒤쫓아온 혜명에게 의발을 탈취하러 왔으면 가져가라고 바닥에 던진다. 혜명은 그 의발을 가져가려 하다가 모순에 빠진다. 이 가사와 발우가 진정 진리인가. 그 상황에서 어중간한 변명을 한다. 나는 법을 구하러 온 것일 뿐 다른 뜻은 없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찌하지 못하는 혜명에게 혜능은 말한다.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 하라. 이때를 당해 그대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무엇인가. 이때 혜명의 심상 속 갈등과 모순이 일시에 타파되며 홀연히 자신의 본래면목을 깨닫는다. 10여년 전 유행한 청년들이 싫어하는 말이 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인데 기성세대의 불합리한 요구에 던져진 청년들에게 고통을 감내하라는 폭력적 요구처럼 받아들여진 측면이 강하다. 물론 청춘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김난도 교수의 책 제목을 인용해 남발하던 상황에서 비롯된 일이다. 왜 청춘은 아플 수밖에 없는가. 그것은 관념 짓는 것을 열심히 배워온 그들에게 이 강호는 변칙과 반칙이 난무하기에 당연히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이기도 하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선이란 물과 같다. 진정한 선이란 선악을 떠나 있고 진정한 청정함이란 더러움과 깨끗함을 떠난다. 그것은 초월적이거나 이상적인 별세계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세상이다. 다만 나의 좁은 견해에 세상을 맞춰넣으려니 고통스러울 뿐이다.

어떤 공상과학 드라마에서 외계의 첨단과학기술을 전수받고자 하는 인류에게 외계인이 이렇게 말한다. "인류는 아직 철이 없어서 이 기술은 인류에게 해롭다." 인간의 뇌는 인간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그 무엇이다. 인류가 오늘날에 이르는데 혁혁한 공헌을 한 두뇌지만 이 두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은 아직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내 머리통인데 나의 통제를 벗어날 때가 많다. 온갖 것을 구분하고 관념 짓고 위험과 안전을 분석하고 살아남았지만 그 추상적인 관념 짓는 능력에 갇혀 선악을 따지며 어리석은 일을 곧잘 벌인다.

마침 좋은 계절이다. 영원할 것 같던 폭염과 열대야가 하늘 높이 멀어져간다. 변화하는 모든 것이 진리를 말한다. 철 없던 시절 고집하던 것들 모두 흘러간다. 하늘의 구름이 흐르듯 한 편으론 어중간한 그 흐름이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듯 우리 삶의 어중간한 변화가 본래 완전한 순간으로 느껴지면 한철 불사로 충분할 것이다. 계절의 변화는 선한가 악한가. 대답 없는 허공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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