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대형 자본들은 이미 '기후 인프라'라는 새로운 경기장에 들어선 지 오래지만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기후 인프라 투자시장에서 여전히 출발선 근처에 서 있다. 태양광·풍력·BESS(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 전기차 충전 인프라까지. 이제는 기술경쟁을 넘어 자본의 경쟁이다.
지난해 전 세계 에너지 전환(Energy Transition) 분야 투자액은 2조1000억달러(약 3000조원)를 넘어섰다. 그중 청정에너지 인프라에만 2조달러가 투입됐다. 화석연료 투자액의 2배다. 그런데 한국의 기관자본은 해당 분야에서 여전히 대출과 채권 형태의 투자에만 머무르며 '위험'이라는 단어에 과도하게 반응한다.
특히 국내 보험사들은 2023년 도입된 K-ICS(자본건전성 기준) 제도에 따라 기후 인프라 분야 지분투자 시 과도하게 높은 위험값을 부과받고 추가 자본확충 부담에 놓이게 됐다. 규제 리스크에 갇혀 건전한 투자기회를 잃는 꼴이다. 한편 연기금과 공제회는 그간 해외펀드에는 활발히 지분참여를 해왔지만 정작 국내 시장에는 좀처럼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 사이 해외기업들과 글로벌 인프라펀드들은 한국의 성장잠재력에 주목하며 앞다퉈 진입하고 있다. 경쟁은 이미 국경 밖에서 시작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자본은 점차 관련 시장에 대한 경쟁력과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또한 글로벌 플레이어가 국내 프로젝트의 지분을 선점하면서 양질의 자본시장 생태계를 구축할 이종자본 간의 건전한 경쟁체제 자체를 왜곡시키는 결과 역시 초래한다. 한편 연기금, 공제회, 보험사들과 같은 기관자금의 원천이 우리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자금임을 상기할 때 결과적으로 전 국민적인 기후 인프라 지분투자 참여기회를 축소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제 국내 대형자본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 대출 중심의 수동적 자금공급자가 아니라 산업의 방향을 함께 설계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 기후 인프라 투자는 유행이 아니라 이미 글로벌 자본시장의 메인스트림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예측 가능한 현금흐름과 장기간 안정적 수익, 그리고 RE100 수요에 기반한 폭발적인 성장잠재력이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히 존재한다. 오히려 부동산보다 시장위험이 현저히 적지만 규제는 그 반대로 설계돼 있다는 점도 아이러니다.
사실 국내 보험사들은 지난 10년 이상의 재생에너지 대출실적을 바탕으로 이미 관련 분야에서 일정수준의 경험과 역량은 축적해왔다. 다만 과도한 규제가 이들의 손발을 묶고 있어 보다 깊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지분투자 분야로의 본격적 확장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이는 단순한 비효율을 넘어 사회적 잠재역량의 낭비이자 기회상실이 아닐까.
기후 인프라 확산이라는 큰 방향에 동의한다면 정부부터 달라져야 한다. 이제 금융감독 규제가 보다 섬세하게 진화할 필요가 있다. 무작정 위험값을 낮추자는 말이 아니다. 실제 리스크에 비해 과도하게 부과된 위험값을 실질 위험도에 따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그래야 자금이 원활히 흐르고 산업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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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인프라 투자는 더 이상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계산의 문제다. 이제 자본의 눈을 들어 기후를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