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직도 '나스닥 드림'만 꿈꾸는가: 상장보다 중요한 생존의 방정식

[기고] 아직도 '나스닥 드림'만 꿈꾸는가: 상장보다 중요한 생존의 방정식

정태흠 아델파이벤처스 대표
2026.02.03 10:22

최근 코스닥(KOSDAQ)의 기세가 매섭다. 2026년 1월, 코스닥 지수는 4년 만에 1000포인트를 돌파하며 '천스닥' 시대를 다시 열었다. 현재 코스닥 상장사는 약 1820여 개, 전체 시가총액은 약 580조 원(약 37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반면, 기술주의 본고장 나스닥(NASDAQ)은 약 4000여 개의 기업이 상장되어 있으며 시가총액은 무려 42조 달러(약 6경 원)에 달한다.

최근 정부가 '국가창업시대'를 선포하며 역대 최대 규모인 3.4조 원의 창업 지원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현장의 스타트업들은 "국장을 떠나 나스닥으로 가겠다"는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한국에서 30개 이상의 상장 포트폴리오 경험과, 미국 나스닥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CFO로서 자본을 조달해 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나스닥 상장 붐 이면에는 우려스러운 대목이 적지 않다. 준비되지 않은 '나스닥 드림'이 나스닥 입성 후 퇴출되거나 거래량 절벽에 갇히는 비극은 왜 반복되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냉혹한 현실은 무엇인가?

1. '입학'은 쉽지만 '졸업'이 어려운 구조

한국 코스닥은 소위 '허가제'다. 거래소가 정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승인 도장을 찍어준다. 반면 미국은 요건만 맞추면 상장되는 '신고제'이자 네거티브 규제 시장이다. 하지만 이 '열린 구조'는 함정이다. 한국은 입학(상장)이 어렵지만 일단 들어가면 퇴출이 쉽지 않은 반면, 미국은 입학은 쉽지만 상장 유지 요건을 못 맞추면 가차 없이 쫓겨나는 '졸업이 어려운 구조'다. 실제로 나스닥에 진출했던 많은 한국 기업이 상장 후 거래량 부족이나 주가 미달로 지리멸렬하다 퇴출되는 사례를 숱하게 보았다. 준비되지 않은 기업에게 나스닥은 축복이 아닌 독배가 될 수 있다.

2. 상장은 끝이 아닌 '피나는 IR'의 서막

한국에선 상장을 그간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자 마침표로 여기며 투자자들의 환호 속에 축배를 든다. 그러나 미국 시장에서 외국계 기업은 철저한 '듣보잡'이다. 상장하는 순간, 더 치열한 생존 투쟁이 시작된다. CFO시절, 매주 1~2일은 뉴욕의 애널리스트와 기관 투자자, 투자은행을 1시간 단위로 만나는 '고난의 행군'을 소화해야 했다. 미국 시장은 상장하는 순간부터 회사를 세일즈해야 하는 피나는 IR(Investor Relations) 전쟁터로서 미국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쌓고 존재감을 알리는 일은 상장 준비보다 수십 배는 더 고통스러운 여정이다.

3. 보편적 관세 장벽과 비즈니스 모델의 재편

2026년 현재, 미국발 보호무역주의와 '보편적 기본 관세'는 나스닥 상장을 꿈꾸는 기업들에 거대한 장벽이 되었다. 과거에는 기술력만 있으면 나스닥 상장이 글로벌 시장 진출의 보증수표였지만, 이제는 다르다. 관세 장벽을 뚫고 미국 현지에서 매출과 이익을 낼 수 있는 실질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면, 나스닥 상장은 오히려 막대한 공시 비용과 규제 비용만 초래하는 짐이 된다. 현지 법인 설립과 공급망 재편 없는 상장은 속 빈 강정일뿐이다.

4. 자본의 속도가 다른 '조달의 미학'

그럼에도 나스닥이 매력적인 이유는 '자본의 속도'다. 한국의 제3자 배정보다 훨씬 진화된 RD(Registered Direct)나 Follow-on Public Offering시스템이 대표적이다. 10여 년 전, 자금 조달을 위해 금요일 장 마감 후 투자자 피칭을 시작해 토요일에 텀시트(Term Sheet)를 확정하고, 일요일에 계약서에 사인한 뒤 월요일 개장 전 펀딩을 마무리했던 속도전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도 수백억 원을 즉각 조달할 수 있는 이 시스템은 자본주의의 정점이다.

5. 투명성과 페널티: '마사 스튜어트'가 남긴 교훈

하지만, 투명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과거 임클론(ImClone)의 창업자 샘 왁셀과 미팅을 한 적이 있다. 그와 함께,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까지 감옥에 갔던 내부자거래 사건은 미국 자본시장의 엄격함을 상징한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물을 흐리는 범법행위에 가혹할 정도의 페널티를 부여한다. 반면 한국 시장은 투자자 피해 최소화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다 보니, 엄격한 퇴출 기준의 적용이 상대적으로 유연한 편이다. 나스닥을 원한다면 글로벌 수준의 투명성이라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6. '대표자 족쇄'를 풀고 '연쇄 창업'으로

한국 코스닥 대표들 사이엔 "죽기 전엔 주식을 못 판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정작 상장해도 가난하여 주식담보대출로 증자에 참여하다 주가 하락/반대매매라는 악순환에 빠지는 안타까운 일이 비일비재하다. 반면 미국은 경영진이 스톡옵션과 매도 프로그램(10b5-1)을 통해 적절한 보상을 받는 것을 당연시한다. 대표가 보상받고 그 자본이 다시 새로운 스타트업으로 흐르는 '연쇄 창업(Serial Entrepreneur)'의 선순환이야말로 우리가 배워야 할 진정한 자본주의의 구조다.

결론: 나스닥, '진검승부'를 원하는가 아니면 '피난처'를 찾는가

한국정부의 강력한 스타트업 지원책은 훌륭한 마중물이다. 하지만 국내 규제가 싫어서, 혹은 막연한 밸류업을 기대하며 나스닥을 피난처로 삼아선 안 된다. 글로벌 관세 장벽을 정면으로 돌파할 체력이 있는가? 연간 수억-수십억 원의 컴플라이언스 비용을 감당하며, 매주 뉴욕 투자자들 앞에서 벌거벗을 용기가 있는가? 나스닥은 '대박'을 터뜨리는 복권이 아니라, 글로벌 표준에 맞는 체력을 증명해야 하는 냉혹한 전장이다.

이제는 한국 시장의 내실 있는 발전과 기업의 글로벌 확장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할 때다. 모든 회사가 나스닥에 갈 필요도 없고, 현실적으로 모두가 갈 수도 없다. 나스닥은 철저히 준비된 자에게는 무한한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약속의 땅'이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에게는 자본만 축내는 가혹한 유배지가 될 뿐이다.

오히려 내수 기반이 탄탄하고 국내 규제 환경에 최적화된 기업이라면, 코스닥에서 강소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 기업과 국가 경제 모두에 훨씬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실제로 해외 스타트업 경영자들을 만날 때마다, 본인은 한국 코스닥 시장의 역동성과 높은 유동성이 가진 매력을 적극적으로 알리곤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디에 서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싸우느냐'다. 다만, 보호무역과 관세의 파고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장기적인 진검승부를 펼치고 싶은 기업, 그리고 나스닥이 요구하는 엄격한 투명성과 혹독한 IR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할 준비가 된 경영자라면 미국 시장으로의 도전을 주저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 시장은 준비된 혁신가에게만 그 문을 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