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공직사회 '간부 모시는 날'의 종언

[기고]공직사회 '간부 모시는 날'의 종언

최동석 인사혁신처장
2026.04.28 05:30
사진제공=인사혁신처
사진제공=인사혁신처

불교 경전 '벽암록'에는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나온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안과 밖에서 동시에 껍질을 쪼아야 한다는 말이다. 변화는 안팎의 노력이 함께할 때 가능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직사회의 오래된 불합리한 관행이었던 '간부 모시는 날'이 사실상 사라지고 있는 것 역시 인사혁신처의 정책 추진과 각 기관 내부의 자정 노력이 맞물리며 나타난 결과다.

그동안 직원들이 순서를 정해 사비로 상급자의 식사를 대접하는 이른바 '간부 모시는 날'은 미덕인 것처럼 이어져 왔다. 그러나 하급자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어려운 암묵적 압력이었고, 조직 전체로는 상하 간 경직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었다. 인사혁신처와 각 기관이 이를 반드시 개선해야 할 문제로 규정하고, 단계적 조치를 밟아온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간부 모시는 날 3차 실태조사' 결과는 공직사회에 생긴 변화를 보여준다. 조사는 49개 중앙행정기관, 17개 시·도, 226개 시·군·구 소속 공무원을 대상으로 지난달 16일부터 25일까지 10일간 이뤄졌다. 국가는 'e-사람', 지방은 '인사랑' 시스템을 통해 총 18만1688명이 응답했다.

무엇보다 최근에 간부 모시는 날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2024년 1차 조사 때 18.1%, 2025년 2차 조사 때 11.1%에서 이번에 1.7%로 크게 줄었다. 중앙행정기관 상당수에서는 경험 응답이 한 건도 없었고, 거의 모든 기관에서 경험률이 1% 미만으로 나타났다. 3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18%대에서 1%대로 급감한 수치는 이 관행이 빠르게 약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직사회의 이 같은 변화는 단계적인 조치의 결과다. 인사혁신처는 실태조사를 통해 현황을 파악하고, 지난해 11월에는 익명 신고센터를 마련해 제보 창구를 열었다. 지난 1월에는 전 부처에 개선 협조를 요청하고, 관련 회의를 통해 추진 방향을 공유했다. 이어 2~3월에는 담당 간부들이 주요 기관을 방문해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현장 의견을 수렴했다. 제도적 장치와 현장 점검, 소통이 병행되면서 조직 내부의 인식 변화가 커졌고, 자연스럽게 관행의 축소로 이어졌다.

여전히 과제는 남았다. '1.7%'라는 수치는 완전한 해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잘못된 관행은 잠시 사라진 것 같아도 조직 문화 깊숙이 뿌리가 남아있을 수 있는 만큼 지속적인 관리와 점검이 필요하다. 나아진 공직문화의 효과는 조직 내부에 머물지 않는다. 일하는 방식이 합리적으로 바뀔수록 행정 서비스의 질도 함께 개선된다. 공직사회가 보다 효율적이고 신뢰받는 조직으로 자리 잡을 때 그 성과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공무원이 자율적 주체로 일할 수 있으려면 자율·책임·협업의 인사관리 원칙이 조직 문화로 뿌리내려야 한다. 경직된 보고 문화와 불필요한 대기 근무 같은 시대착오적 관행도 하나씩 걷어내야 할 문제다. 공무원이 오로지 국민을 위해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출근길이 즐겁고 일할 맛 나는 공직사회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오랜 관행이었던 간부 모시는 날 근절은 그 긴 여정의 첫 성과이자, 더 나은 공직사회를 향한 출발점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