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탁 국토교통부 1차관
로봇이 축구를 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이 계단을 오르는 월드컵 광고 영상이 화제다. 화면 속에서나 보던 똑똑한 인공지능 로봇이 이제 우리 곁으로 걸어 나오는 '피지컬 AI'(Physical AI)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챗봇이 말로 답한다면 피지컬 AI는 행동으로 우리의 일상을 돕는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놓치는 게 있다. 피지컬 AI의 진짜 승부처는 로봇 관절의 정교함이나 모터의 힘이 아니다. 로봇이 세상을 읽고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공간정보'(지도)에 있다.
왜 공간정보가 중요한가? 로봇의 본질은 결국 현실 세계에서의 '이동'과 '노동'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익숙한 '서울역 2번 출구'가 자체 센서만 믿고 움직이는 로봇에게는 혼란스러운 미로가 될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로봇이라도 철저한 준비 없이 현실에 던져지면 길 잃은 초행길 여행자가 되고 만다. 로봇이 현실에서 안전하게 작동하려면 3차원 고정밀 공간정보와 이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지능형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공간정보 AI 대전환'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우선 로봇이 센서로 세상을 정확히 알아볼 수 있도록 3차원 고정밀 공간정보인 '신(新)대동여지도'를 전국에 구축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로봇이 국토 공간의 의미와 맥락까지 이해할 수 있는 AI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현실에 나서기 전 가상의 도심 안에서 수만 번의 돌발상황을 미리 경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디지털 로봇 학습장'도 마련할 계획이다.
이런 노력은 단순히 보는 국토를 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국토로의 대전환을 뜻한다. 디지털 지도 위에 물리법칙이 적용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피지컬 AI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4위 수준❲'25, GKI Readiness Index❳의 우수한 공간정보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최첨단 로봇과 자율주행 기술을 가장 먼저 시험하고 완성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를 갖추고 있다.
국토가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국민의 삶은 획기적으로 변한다. 자연어 질문 하나만으로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AI 비서가 사전 진단해 주고 재난 상황에서는 가장 안전한 대피로를 실시간으로 안내받는다. 재난 현장에 투입된 구조 로봇은 위험물 위치를 파악해 인명을 구하고 배달 로봇은 복잡한 원도심 골목길의 어르신 댁 앞마당까지 정확하게 택배를 배송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공간정보가 AI와 친화적이지 않으면 아무리 값비싼 로봇도 우리 도시 위에서 길을 잃거나 빈번히 넘어지는 고철에 불과할 뿐이다. 로봇과 AI가 즉시 학습하고 추론할 수 있도록 공간의 형상·의미·맥락를 구조화한 '지능형 공간 데이터'를 구축해야만 로봇이 활약할 무대도 마련되는 것이다.
피지컬 AI 시대의 지도는 단순히 보여주는 길 안내 도구가 아니다. 로봇이 인간 세계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지탱하는 새로운 '국가 핵심 전략 인프라'다. 모터와 관절의 하드웨어 경쟁에 시선을 빼앗기는 사이 진짜 승부는 이미 지도 위에서 시작됐다. 국토교통부는 국토를 더 똑똑하고 편리하게 디자인해 국민 누구나 그 혜택을 누리는 '공간지능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