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칼럼]왜 한국형 베어허그(Bear Hug)가 필요한가

[유효상칼럼]왜 한국형 베어허그(Bear Hug)가 필요한가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6.09.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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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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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권을 둘러싼 M&A 시장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이달 초 이른바 '한국형 베어허그(Bear Hug)법'으로 불리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됐기 때문이다. 베어허그는 인수자가 대상 기업에 매력적인 인수 조건을 공개적으로 제시해 이사회가 이를 검토하고 입장을 밝히도록 압박하는 M&A 전략이다. 큰 곰이 상대를 꼼짝 못 하게 꽉 껴안고 있는 모습에서 유래한 말이다. 베어허그의 본질은 인수 제안의 수락을 강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사회로 하여금 주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설명책임(accountability)을 부여하는 데 있다. 최근 고려아연이나 SM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에서 확인했듯, 적대적 공개매수 상황에서 이사회가 주주 전체의 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입장을 밝히도록 하는 절차의 필요성은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베어허그의 입법 배경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낮은 기업가치 문제가 있다. 개정안의 제안이유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한국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의 약 69%가 PBR 1배 미만으로 미국 20%, 일본 36%에 비해 그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PBR이 낮다는 것이 경영진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가치가 낮은 기업에 인수 제안이 들어왔을 때, 이를 거절하고 현 경영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주주에게 더 유리한 이유를 이사회가 설명할 의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주주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개매수 등에 대해 이사회가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판단 절차를 거쳐 의견을 표명하고, 인수 제안의 내용과 검토 계획, 판단 결과와 이유 등을 공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며, 공개매수에 대한 의견표명 의무를 위반할 경우 1억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반했을 때 책임을 지는가'가 명확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사회가 아주 민감하고 전문적인 경영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검토 범위와 절차, 독립성 요건, 공시 수준 등 명확한 기준 없이 제재부터 한다면 이사회는 주주가치 제고보다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한 형식적인 대응에 치우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 자본시장은 '포이즌 필(Poison Pill)'이나 복수의결권 같은 글로벌 표준 경영권 방어 수단이 거의 부재한 실정이다. 이처럼 공수(攻守)의 균형이 무너진 현실에서 이사회에 법적 책임과 설명 의무만 일방적으로 가중할 경우, 기업 경영권은 심각한 방어력 공백에 직면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제도의 악용 가능성이다. 행동주의 펀드나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가 실제 인수 의사나 자금 능력 없이 인수 제안을 공개해 주가를 움직이거나 경영진을 압박하는 '떠보기식 베어허그'가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경쟁회사, 특히 해외 경쟁회사가 인수 의향을 내세워 대상 기업의 핵심 기술이나 영업 정보를 파악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한국형 베어허그의 첫 번째 관문은 '진성 인수 제안(bona fide offer)'을 가려내는 것이어야 한다. 인수자의 자금조달 능력과 인수 의사, 가격과 거래 조건의 구체성 등을 확인하고, 허위 또는 시장교란 목적의 제안에는 강력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특히 인수자의 자금조달 능력이 진성 인수 제안을 가르는 핵심 기준이라는 점에서, 정부 일각에서 거론되는 '베어허그 M&A 지원펀드' 역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스스로 충분한 자금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인수자가 공적 자금에 의존해 제안을 던지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도리어 함량 미달의 제안이나 시장 교란 목적의 베어허그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규모와 지배구조에 따른 실효성 차이도 간과할 수 없다. 대기업집단은 계열사와 특수관계인, 우호지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외부에서 높은 가격을 제시하더라도 실제 경영권을 확보하기 어렵다. 반면 상대적으로 시가총액이 낮고 경영권 방어 수단이 취약한 중소·중견 상장사는 인수 제안만으로도 주가와 경영권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같은 제도를 적용하더라도 기업 규모에 따라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과 실제 기업 부담은 크게 달라진다는 의미다.

이러한 양극화 우려는 오는 11월 시행을 앞둔 '저PBR 기업 공표제도'와 맞물려 더욱 증폭된다. 기업가치는 PBR이라는 단일 지표만으로 평가할 수 없으며 수익성, 성장성, 자본효율성, 미래 현금흐름과 산업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PBR이라는 단일 지표가 시장에서 기업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작동할 경우, 중소·중견기업은 베어허그에 따른 경영권 방어 부담과 저PBR 공표에 따른 '낙인 효과'까지 겹치면서 이중고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질문은 한국형 베어허그가 과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기업집단에는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서 중소·중견 상장사에만 새로운 공시와 이사회 책임, 법적 부담을 추가한다면 기업가치 제고라는 목적보다 또 하나의 자본시장 규제를 만드는 데 그칠 가능성도 크다. 결국 문제는 베어허그 자체가 필요한가가 아니라, 한국의 지배구조와 M&A 시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형태로 설계할 수 있느냐에 있다.

해외 선진 자본시장은 단일 법률 형태의 베어허그 제도를 두기보다, 오랜 판례와 정교한 절차적 규칙을 통해 이해관계를 입체적으로 조정해 왔다. 미국은 1980년대 적대적 M&A가 활발해지는 과정에서 델라웨어 판례들을 통해 이사회의 경영 판단 한계와 정당한 경영권 방어 범위를 구체화했다. 영국 역시 1968년 설립된 인수합병위원회(Takeover Panel)와 인수규정(Takeover Code)을 중심으로 'Put Up or Shut Up' 규칙을 도입해 잠재적 인수자의 무분별한 시장 교란을 통제해 왔다. 두 나라 모두 특정 주체에게 일방적으로 힘을 실어주기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이사회·인수자·주주 간의 균형점을 찾아온 것이다.

한국도 법률 조문 하나만으로 제도가 완성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법안 통과 후 준비 기간 동안 시행령과 감독규정을 통해 진성 인수 제안의 판단 기준, 독립적 심사 요건, 공시 내용, 정당한 경영권 방어의 범위를 명확히 구체화해야 한다. 특히 인수 제안 공시 시한을 제한하고 자금조달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제출을 의무화함으로써, 시장 교란 목적의 허위 제안을 사전에 차단하는 구체적인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나아가 단순한 절차적 장치에 그치지 않으려면 베어허그와 의무공개매수제도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의무공개매수는 인수자가 일정 지분 이상을 취득할 때 잔여 주주 지분도 동일한 가격과 조건으로 매수하게 만드는 제도다. 베어허그가 이사회로 하여금 인수 제안을 충실히 검토하게 만드는 '절차적 보호장치'라면, 의무공개매수는 대주주가 독점하던 경영권 프리미엄을 일반주주와 공유하도록 돕는 '재무적 보호장치'다. 경영권 경쟁의 과정과 결과 모두에서 주주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려면 반드시 이 두 제도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베어허그의 본질은 적대적 M&A의 문턱을 낮추는 데 있지 않다. 이사회가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지배구조 개선에 있다. 동시에 대기업집단에는 견고한 지배구조의 벽을 넘어설 실질적인 경영권 경쟁을 가능하게 하고, 중소·중견기업에는 허위·압박성 인수 제안으로부터 경영권과 기업가치를 지킬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제도가 오히려 또 하나의 규제와 비용을 추가하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의 성패는 법안의 조속한 통과보다 시행령과 하위 규정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배주주는 그 자리를 지킬 이유를 설명하고, 인수자는 구체적인 의지와 능력을 증명하며, 일반주주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한국 자본시장에 필요한 진정한 'K-베어허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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