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난수표' 대입전형, 부작용은 없나

[기자수첩]'난수표' 대입전형, 부작용은 없나

배준희 기자
2011.12.20 06:00

학부모 이모씨(59·서울)는 고3이 되는 막내아들의 대학입시 전략을 듣기 위해 얼마 전 한 사설 입시기관의 설명회를 찾았다. 그러나 이씨는 난수표 같은 대입전형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이내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는 "영어와 한글이 뒤섞인 뜻도 알 수 없는 전형들이 수천 개라는데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씨의 경우처럼 현재 대한민국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대학입시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올해 대입전형 수는 수시와 정시를 합쳐 3300여개에 이른다. 한 사립대 관계자가 "우리도 정리된 책자를 보지 않고는 모두 알지 못 한다"고 고백할 정도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시보다는 정시가 '대세'인 구조였다. 그러던 것이 2000년 대 중후반 들어 수시모집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해 서울대는 내년 입시부터 전체 입학정원의 약 80%를 수시에서 뽑겠다고 밝혔다.

수시는 수능과 학생부 성적 같은 계량화된 수치에 의존한 평가를 지양하고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도입됐다. 대표적인 예가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도입한 입학사정관제다. 평가 요소가 다양한 만큼 전형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학생 선발이 조기에 이뤄지는 수시 대세 구조에서 서울 상위권 대학들 사이에서는 우수학생들을 입도선매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이화여대 등이 '글로벌인재', '과학특기자'란 이름으로 실시하는 전형의 합격자들 절반 정도는 외국어고와 과학고 출신이다.

이런 탓인지 일선 고교에서는 수시 대세 구조의 '명'(明)보다는 '암'(暗)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다. 한 고3 담임교사는 "특기자전형은 특목고 출신들이 장악을 하고 입학사정관제는 개별 고교 입장에서 대비하기 힘든 환경"이라며 "평범한 학생들이 우수 대학에 진학하는 문이 더 좁아진 것 같다"고 했다.

"잠재력을 보고 선발한다"는 대학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거의 없다. 평범한 가정의 학생들이 어릴 적부터 자신의 소질과 재능에 맞춘 교육을 받기는 힘들고 결국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스펙관리'가 잘된 학생들이 수시 대세 구조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수능과 학생부 위주 선발에 비해 다양한 요소를 평가하는 수시모집 확대가 갖는 장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대학과 교육 당국자들은 수시 대세 구조가 교육현장 일선에서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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