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시교육청은 영훈·대원국제중학교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성적조작, 회계비리 등 다양한 비위사실을 밝혀냈지만 금품수수, 시교육청 유착 의혹 등 핵심적인 내용은 비껴가면서 '부실감사' 지적이 일고 있다.
5년전 국제중 지정 당시 제기됐던 '귀족학교 변질' 우려가 현실이 됐지만 시교육청은 '지정취소' 등 강력한 제재에는 소극적인 입장을 내비춰 향후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료폐기·점수조작 등 입맛따라 골라뽑기…"조직적 비리"
시교육청 감사결과 영훈·대원중에서는 성적조작과 이를 은폐하기 위한 원본 채점표 무단폐기 등 조직적인 입시비리 정황이 포착됐다.
영훈중의 경우 교감 A씨와 입학관리부장 B씨, 교무부장 C씨 등 3명이 '주관적 영역(일반 전형)', '추천서자유기술(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 점수를 만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성적을 조작했다. 시교육청은 2013학년도 영훈중 지원자 1400여명의 성적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성적을 조작한 정황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객관적(77점)·주관적(23점) 영역으로 구성된 서류전형 채점 영역 중 객관적 영역 점수가 낮은데도 합격한 이들의 주관적 영역 점수를 들여다봤다는 것.
조사 결과 입맛에 맞는 학생을 뽑기 위해 점수를 조작한 정황이 드러났다. 비경제적 사회적배려대상자(사배자) 중에서는 합격권인 16위밖에 있던 3명이 주관적 영역에서 만점을 받아 최종 합격했다. 이들 중 일부는 만점을 받았는데도 합격권 안에 못 들자 다른 지원자의 점수를 깎아 합격시켰다.
영훈학원에서는 명예퇴직수당·인건비 부당 수령과 이사장의 학교회계 부당 관여 등 운영상의 전반적인 비리도 확인됐다.
영훈·대원국제중학교는 국제중 신청 당시 정원의 20%를 사배자로 뽑고 장학금을 전폭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다. 영훈국제중의 경우 계획상으로는 최소 2억원 안팎을 지원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2009년 1억1000만원, 2011년 3300만원 지원이 전부였다. 2010년, 2012년에는 지원금이 없었다. 대원국제중도 2009년에만 1억원 이상을 '반짝' 지원하고 이후로는 2010년 300만원, 2011년 4900만원, 2012년 3800만원을 지원하는 데 그쳤다.
◇기여입학 등 금품수수, 시교육청 유착관계 의혹 못 다뤄
시교육청은 이번 감사에서 입학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내용을 조사하지 못했다. 조승현 감사관은 "2000만원을 내고 자녀를 영훈중에 입학시켰다는 학부모와 연락을 취할 수 없었다"며 "학부모로부터 제보를 받은 시의원(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에게 연락처를 요청했으나 받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독자들의 PICK
지금 1,099명 읽는 중
이에 대해 김형태 의원은 "시교육청에서 공식적으로 학부모 연락처를 요청한 적이 없다"며 "마지못해 감사관실 사무관이 한 번 찾아온 게 전부"라고 반박했다.
이 밖에 대원중 교사의 학교발전기금 상납 의혹 등 금품수수 의혹도 이번 감사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시교육청은 학교 행정·회계자료만으로 제한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금품수수 의혹은 검찰에서 다뤄야 할 부분이라는 입장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발전기금을 낸 학부모 중 일부에게 연락을 취해 편입학 비리 의혹에 관해 물었으나 대부분 학부모가 연락을 받지 않거나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감사에서 영훈학원과 시교육청 간 유착관계 의혹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앞서 김형태 의원은 "시교육청 공무원 출신 5명이 2011~2012년 영훈학원 소속 학교에 취직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시교육청과의 유착관계에 대해 철저히 감사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이처럼 시교육청은 '국제중 편입학 장사 논란'에 대한 핵심적인 의혹을 규명하지 못한 채 정황적 증거를 근거로 한 성적조작 행위만을 밝혀냈다. 조 감사관은 "결정적 자료(심사자별 점수표)를 폐기해서 감사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면서도 "통상적으로 입학자료는 3~5년 보관하지만 몇 년간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지침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영훈중 '기관조치'… "2015년 평가에 반영할 것"
시교육청은 영훈중에서 성적조작 및 합격자 사전내정 등 비리가 확인됐음에도 '기관경고' 조치를 내렸다. 이번 비리를 이사장 등 소수 관계자가 연루된 개인비리로 판단한 셈이다. 시교육청은 당장 국제중에 대한 조치를 내리지 않고, 2015년 운영성과평가에 검찰 수사결과를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감사관은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5년마다 국제중 운영성과를 평가해 지정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되면 취소할 수 있다. 영훈중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정목표가 불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냐는 문제가 있다"며 지정취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췄다.
하지만 영훈·대원중이 사배자에 대한 장학금 확보 계획 및 이행확인서를 지키지 않았고, 성적조작 등 편입학 비리가 사실로 드러난 만큼 국제중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는 이날 오후 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용린 교육감은 영훈·대원중의 국제중 승인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국제중 비리의 핵심은 편입학·뒷돈입학인데 시교육청 감사에서 충분히 밝혀내지 않았다"며 "대원중에 대해서는 대놓고 봐주기 감사를 벌였다"고 비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 흥사단교육운동본부, 교육생각 등 20개 교육단체가 소속된 협의회는 국제중 편입학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영훈·대원중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