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표심, 예산안, 노이즈마케팅

[기자수첩]표심, 예산안, 노이즈마케팅

심재현 기자
2009.12.1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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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기사 썼더니 홍보용으로

"A 국회의원 홈페이지에 갔더니 자기 지역구 예산만 챙긴다는 비판 기사를 스크랩해 놨더라."

언론인으로 오랫동안 국회를 출입하다 정계에 발을 디딘 선배의 말이다.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그랬다는 얘기였다. 이 선배는 그러면서 자신도 기자일 땐 누구누구 국회의원이 자기 지역구 예산 늘리기만 신경 쓴다는 기사를 쓰곤 했는데 '이쪽 세계'에 들어와서 보니 그럴 게 아니더라고 했다.

얘기인즉 이렇다. 국회의원에게 가장 중요한(?) 건 '텃밭 관리'다. 선거 때마다 비례대표로 나갈 수도 없으니 의원으로 장수하는 방법은 이 길밖에 없다. 당 안팎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벽'을 쌓으면 공무원 정년도 부럽지 않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몇 해 전 강원도가 지역구인 B 의원이 성희롱 사건으로 의원직 사퇴 위기에 몰려서도 끝내 버틸 수 있었던 게 이 때문이었다. 지역구에 '충실'했던 이 의원은 지난해 총선에 무소속 출마해 4선 의원 반열에 올랐다. 지역구의 힘이다.

이렇게 중요한 텃밭 관리에 딱 들어맞는 방법이 예산 확보다. 이만한 사업을 이만한 돈을 따와 해냈다는 생색내기다. 선거 때도 '이런 일을 하겠다'보다 '이런 일을 했다'가 잘 먹힌다.

그런데 이걸 언론에서 눈치 채고 기사로 써준다면 의원 입장에선 가만히 앉아서 홍보비를 더는 셈이 된다. 질책하는 내용이더라도 이렇게까지 욕먹으면서 지역구를 위해 뛰고 있다는 식으로 광고가 된다. 한 정치권 인사는 "언론의 질책은 순간이요 당선의 영광은 오래더라"고 말했다. 정치판 '노이즈 마케팅', A 의원의 스크랩은 그 결과물이다.

올해도 이런 구태는 어김없다. 지난 주 국회 국토해양위 예산 처리 결과 3조5000억원이 늘었다. 국토위 소속 C 의원은 지역구 예산 2700억원, D 의원은 135억원, E 의원은 50억원을 증액시켰다. 언론에선 지역구 예산 챙기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했지만 오히려 이들 의원은 반색했다.

그렇다고 해서 기사를 안 쓸 순 없다. 이렇게라도 쑤셔대야 조금이나마 '곳간'이 새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판과 노이즈 마케팅의 간극. 예산안 심의를 지켜보는 기자들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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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특파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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