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은 2004년 3월 멀쩡한 여의도 당사를 버리고 영등포 청과물시장에 위치한 옛 농협공판장 건물로 옮겼다. 불법자금으로 호화 당사 임대료를 해결했다는 파문에 부랴부랴 허름한 폐건물을 골랐다.
열린우리당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노무현의 후예'들이 폐족(廢族)이 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 본 이 건물은 이제 민주당 영등포 당사로 불린다.
폐가처럼 외따로 떨어져 있던 이곳에 지난 2일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대통합민주신당 시절 17대 대선에서 참패하고 18대 총선에서 체면치레는 했지만 전국 단위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것은 오랜만이었다.
민심의 칼날은 매서웠다. 민주당이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숨은 표'가 선거 당일 괴력을 발휘했다. 혹자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회자된 '백욕이불여일표(백번 욕 하는 것보다 한 번 투표하는 게 낫다)'가 제대로 통했다고 말한다.
천안함 이후 극단으로 치닫는 안보위기론에 지친 젊은 층의 정권견제 심리가 극대화됐다는 것이다.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화가 투표율 제고에 한 몫 했다는 의견도 있다. 한 때 '386세대'로 통칭됐던 40대가 무서운 결집력으로 여권에 펀치를 날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문제는 여당의 실책에 대한 반대급부가 표로 연결됐을 뿐 "야당이 좋아서, 야당이 잘해서" 밀어준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당황한 정부·여당이 인적 쇄신을 예고하며 국면전환을 도모하는 사이 야권 일각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승리에 취해 자만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노숙정치'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열린우리당의 영등포 당사 시대를 열었던 정동영 전 의장이 선봉에 섰다. 민심은 민주당과 개혁진보진영이 대승적으로 거듭날 것을 요구하는 만큼 대오각성할 시점이란 요지다. 손학규 전 대표도 가세했다.
대선 주자로 '정세균·손학규·정동영' 트리오의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도 민주당 입장에서는 아픈 대목이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멀지 않았는데 딱히 내세울 만한 새로운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로 '김문수·오세훈' 투톱이 가세하게 된 여권 잠룡 구도에 비하면 더더욱 그렇다. 민주당이 정권심판론자들을 야권 지지층으로 흡수해 대선까지 끌고 가려면 지금 승리에 취할 때가 아니다. 국민이 차려준 밥상에만 기대기에는 대선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