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실리도 명분도 잃은 대북 쌀지원

[기자수첩] 실리도 명분도 잃은 대북 쌀지원

양영권 기자
2010.09.19 18:20

"그 심보, 속통의 크기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북한의 해외홍보용 주간지 '통일신보'는 19일 "남조선에서 큰물(홍수) 피해를 입은 북의 동포들에게 수해물자를 지원하고 쌀을 보내준다고 법석 떠들었는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쌀 5000 톤이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남측이 '인도적인 차원'에서 내린 결단에 대한 북한의 첫 반응이다. 형제국이라는 중국조차 외면하고 있는 가운데 남측의 지원을 일방적으로 폄하한 북한 당국의 뻔뻔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하지만 인색한 지원으로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처음으로 이뤄지는 쌀 지원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쌀 재고량 150만 톤에 비해 5000톤은 너무 적다는 것이다.

박지원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적십자사를 통해 100억원 이내의 수해 지원 물자, 쌀로 따지면 최대 1만여톤을 북한에 보낼 수 있다고 밝히자 "통일부 장관 집에나 갖다 줘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북한이 군량미로 100만톤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는 정부와 여당 관계자의 발언이 흘러나왔다.

적십자의 대북 쌀 지원은 허용하지만 정부 차원의 쌀 지원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어차피 북한에 보낼 구호물자 구입에 사용하는 자금의 대부분은 남북협력기금에서 지원하기 때문에 그 돈이 그 돈이다.

쌀을 정부가 지원하면 군량미 전용이 가능하고 민간이 지원하면 전용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인도적 지원과 대규모 식량 지원은 별개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지만 과거에도 식량 지원이 모두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져 왔기 때문에 두 개념이 대립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천안함 사태가 발생한지 6개월도 지나지 않았고, 북측의 사과 표명도 없는데 대규모 대북 지원에 나설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국내 쌀 재고가 심각한 가운데 최악의 식량 사태에 빠져 있는 동포를 돕지 않는다는 국제 사회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대북 지원에 나서는 것도, 나서지 않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로는 남북관계에 있어 실리와, 명분, 주도권, 어느 것 하나 손에 쥘 수 없다. 북한정권 길들이기 차원의 쌀 문제 접근은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정말 군량미 전용이 우려된다면 북측에 분배의 투명성을 강력히 촉구하는 등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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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논설위원

머니투데이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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