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희망버스 참관기···"영도 죽는다" vs "와줘 고맙다" 갈등의 골 깊어져

지난 30일 11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인근에 45인승 버스가 빼곡히 늘어섰다. 그 흔한 전단지 하나 붙어있지 않았지만 근처를 지나는 시민들 모두 행선지를 짐작하고 있었다.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200여 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만나러 가는 '3차 희망버스'였다.
모임·단체 별로 온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띄었지만 기자처럼 개인 자격으로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11시 15분쯤 버스는 출발하고 한진중공업 사태 관련 내용이 담긴 전단지와 손수건 등이 나뉘어졌다. 기자 티를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섞이고 싶은 마음에 옆자리의 중년 남성과도 간단한 인사만 나눈 터였다.
그러나 바람도 잠시, 사회자가 자기소개를 시켰다. 자신을 '정동영 지지자'라고 소개한 중년남성은 "주최 측이 나눠 준 전단지를 보면 아직도 정 의원에게 선명성을 강조하고 있다"며 발끈했다.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오히려 승객들은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발끈했던 사람이 오히려 머쓱해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20대 여성은 "과거 티벳 여행을 준비할 때 김진숙씨가 트위터로 도와줘서"라고 참여 계기를 말했다. 중년남성은 "아들이 전교 꼴지를 한 성적표를 보고 노동자로 살아가기 힘들 텐데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버스를 탔다고 말했다. 대표로 버스를 빌린 사람은 있었지만, 적어도 버스타기를 강요받은 사람은 없었다.
오후 6시가 넘어 부산에 진입했다. 조선소까지 갈 수는 없었다. 희망버스를 '외부세력'이라고 부르는 부정적 시선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갈치 시장에서 내린 이들은 삼삼오오 30번 시내버스를 탔다. 그러나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서울 말씨를 쓰는 사람들이 잔뜩 타자 한 노신사가 퍼뜩 알아챘다. 욕설이 터져 나왔다. "폭우가 내려 영도사람 다 죽게 생겼는데 뭐하는 짓이냐"가 요지였다. 역시 노년의 희망버스 참석자가 고함으로 맞섰다.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답이 없는 싸움이었다.

한진중공업 인근 청학성당에 도착해 주변 상가를 돌아봤다. "희망버스가 오면 교통이 통제되고 밤새 시끄러워 불편하다"는 건 공통된 의견이었다. "민주당 *들이 보낸 것"이라며 정치적 순수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다.
주민 윤성필(26)씨는 "희망버스 때문에 시내버스가 모두 막혀 차로 30분 거리를 2시간 이상 걸어가야 한다"고 불편을 토로했다. 한 주민은 "나는 괜찮은데 애기가 잠을 못 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독자들의 PICK!
정리해고가 문제라는 의견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표정이었다. 정리해고자가 대부분 영도주민으로 친구의 친구, 친지로 연결되는 탓이었다. 특히 "해고자가 대부분 40~50대 가장인데 그 나이에 뭘 해서 살겠냐"는 동정론이 많았다.
경찰 통제로 청학성당 문화제 진입로가 막히자 희망버스 참석자들은 우회로를 찾아 삼삼오오 언덕을 올랐다. 기자 역시 언덕을 오르다 한 중년 남성에게 길을 묻자, 그는 자신의 차로 기자를 비롯해 수십 명을 실어 날랐다. 감사의 뜻을 전하자 그는 "여기까지 와주신 여러분께 내가 더 고맙다"고 말했다.

31일 새벽 1시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대선조선소 앞 6차선 도로를 점거하고 문화제를 열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 6000여 명 정도로 보였던 인원은 삼삼오오 진입한 인파들로 500m 이상 빽빽하게 늘어섰다. 주최 측에서는 1만5000명 이상으로 추산했다. 정동영·이종걸·홍영표 민주당 의원,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등 야당 정치인도 다수 참석했지만 주인공은 아니었다.
인근 주민들도 하나둘 거리로 구경을 나왔다. 주민 김현상(61)씨는 "이래 봐야 답이 안 나온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 여기까지"라며 "(해외에서 몇 달째 귀국하지 않고 있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청문회에 서야한다. 그 수밖에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영도의 민심이 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