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비준까지..MB 고비마다 승부수

한미 FTA 비준까지..MB 고비마다 승부수

진상현 기자
2011.11.22 17:07

[한미FTA 비준안 통과]국빈 방문 美 의회 처리 '굳히기', '선비준, 후협상' 카드도 제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누구보다 노심초사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국회 비준이 난항에 부딪힐 때 마다 비준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 지난달 미국 의회에서 먼저 비준을 마친 뒤에는 사실상 한미 FTA 비준에 올인하다시피 했고, 여야가 처리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자 직접 국회를 방문해 승부수를 띄우기도 했다.

한미 FTA 비준을 위한 이 대통령의 노력은 취임과 동시에 시작됐다. 취임 후 3.1절, 광복절 등 중요 국내행사와 국무회의 등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준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섯 차례에 걸친 한미 정상회담과 상하원 지도부 간담회, 미국 재계·학계 인사 면담 등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한미 FTA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조속한 비준을 당부하기도 했다.

임기 초 맞은 최대 위기였던 광우병 파동도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빚어진 측면이 컸다. 이 대통령은 2008년 6월19일 특별기자회견에서 "한미FTA 비준이야말로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지름길의 하나라고 판단했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계속 거부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연내에 처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한미 FTA를 중요한 국가 과제로 생각했다는 얘기다.

어려움은 계속됐다. 부시 행정부 때 미국 측의 비준이 좌절되고, 자동차 산업 보호를 강조하면서 무역 개방에 적극적이지 않던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돌파구를 찾기가 더욱 어렵게 됐다.

분기점이 된 것은 지난해 6월 캐나다 토론토 한미정상회담이었다. 이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서명 후 3년 이상 제자리였던 한미 FTA 진전을 위한 향후 추진 일정에 합의했다.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미국의 실업률이 오바마 대통령을 움직였다. 한미 FTA를 미국내 일자리 창출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전략이 백악관 내부에서 확산됐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 측이 강력하게 요구한 자동차산업 보호 문제를 놓고 재협상이 진행돼 지난해 연말 타결됐다.

지난달 미국 국빈 방문도 중요한 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은 미 의회의 이행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굳히기 성격'이 컸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한미 FTA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실직자 보호 방안을 놓고 막판까지 줄다리기 중이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법안 처리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미 의회의 '선 처리'는 우리 국회의 비준을 촉구하는 효과를 거뒀지만 야당의 반대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야권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폐지를 들고 나오면서 국회 비준은 계속 미뤄졌다. 여당도 '강행 처리'에 대한 여론의 부담으로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지난 15일 국회를 찾아 '선 비준, 후 ISD 협상' 카드를 제시하면서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

야당은 여전히 부족한 안이라며 수용하지 않았지만 여당을 중심으로 '할 말큼 했다'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여론이 확산됐고, 이런 기류는 이날 강행처리로까지 이어졌다.

이 대통령이 이처럼 한미 FTA 비준에 공을 들인 것은 FTA가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자유무역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기본이 됐다. 이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한민국은 통상으로 발전해 온 나라"라는 점과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이러한 전략은 더욱더 요긴해졌다"고 강조해왔다. 특히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의 FTA는 우리나라의 FTA 허브 전략을 완성해가는데 결정적인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여기에 한미 FTA가 한미 공조를 강화함으로써 단순히 경제 차원을 넘어 외교와 안보 차원에서도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