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이 먼저다]①'일류' 내달리는 경제, '삼류' 머무르는 정치…바꿔야 하는 이유
'내우외환.'
요즘 삼성중공업이 처한 상황이다. 조선업계의 불황으로 매출전망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올들어 10월 현재까지 삼성중공업의 조선수주액은 85억달러에 머물렀다. 연말까지는 두달 남았지만 당초 목표치인 연간 수주액 125억달러에 턱없이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올해 목표액은 지난해 수주액 150억달러보다 한참 낮춰잡았는데도 그렇다.
그럼에도 연일 국회로부터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내놓으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2007년 발생한 태안 기름유출 사고의 '원죄' 탓이다. 법원은 삼성중공업의 배상책임을 56억원으로 제한했고, 삼성중공업은 지역발전기금으로 1000억원을 출연했지만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회에는 삼성 측에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태안유류피해대책특별위원회'까지 구성됐다. 특위는 '이건희 회장 증인 출석'을 압박용 카드로 제시했다.
지난달 29일 열린 회의에서 "삼성중공업 측의 답변내용을 보고 이 회장의 소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끝에 노인식 삼성중공업 사장에게 "(피해 주민들이 출연을 요구한 5000억원에) 상당하는 부분을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5000억원이면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 1조1000억원의 거의 절반이다.
회사의 사정을 들어주는 의원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특위 위원 18명 가운데 10명이 지역구 민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충청지역 의원들이다. 단순히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차원만 생각한다면 정치권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되겠지만 외국인·기관투자가들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당장 삼성중공업은 내년 사업계획에 이 부분을 얼마나 고려해야 할지 막막하다.
정치권이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경우는 특정 기업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최근 뚜렷해지는 기업의 투자 축소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영향도 있지만 순환출자 금지 등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초점이 맞춰진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도 한 몫 한다.
실제 삼성그룹 계열사나 SK그룹 지주사인 SKC&C 등이 포함된 코스피200 기업들이 올들어 지난달 8일까지 1조3000억원의 자사주를 사들였다. 순환출자 규제가 이뤄지니 자사주를 미리 사두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기업들에 왜 투자를 망설이냐 물어보니 첫째로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을 얘기하고, 둘째는 '경영권 방어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나'라는 얘기를 하더라"고 전했다.
기업투자 감소는 바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한양대에 의뢰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이 R&D(연구·개발) 투자를 1조원 줄일 경우 1만6000개의 일자리가 감소한다. 순환출자를 금지할 경우 국내 GDP(국내총생산)이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최근 열린 세미나에서 "순환출자 해소에 드는 비용을 최소한으로 잡아도 투자승수 효과로 GDP는 약 2%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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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은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얘기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 경제상황은 이 주장이 모순임을 드러낸다. 최근 1년간 기존 정치권에 대한 염증에서 출발한 '안철수현상'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지만 정치권은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재벌 때리기'로 화살을 돌렸다. 현진권 한국경제연구원 사회통합센터 소장은 "우리 경제가 선진국 대열에서 경쟁하는 수준까지 갔지만 정치는 아직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공감대를 이룬다"며 "원칙적으로는 정치개혁이 경제민주화보다 우선"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인 안철수 무소속 후보 역시 지난달 31일 한 포럼에 참석, "정치개혁이 돼야 우리가 정말 바라는 목적인 일자리 창출, 경제성장 등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조만간 정치쇄신특별위원회를 설치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 후보는 '정치쇄신'을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정치쇄신'이 추상적 구호의 반복이거나 후보단일화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정략적'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