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1831년, 그의 나이 스물다섯에 친구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와 평등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던 그는 보스턴의 '타운미팅'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 주민들이 모여서 마을 회의를 통해 중요한 사안에 대해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풀뿌리 민주주의'로 대변되는 오늘날 지방자치의 원형이다.
'지역일꾼'을 뽑는 6·4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지방선거는 지역 살림과 정책을 꾸려나갈 '대표자'를 뽑는다는 점에서 대선 등 다른 선거보다는 투표 결과가 훨씬 구체적인 양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우리 동네에 공원이 조성되거나 어린이집이 생기는 그런 '변화' 말이다.
그래서 공약과 정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시의원·구의원 등 사실 얼굴조차 잘 모르는 후보를 뽑으려면 판단기준 우선순위는 '공약'이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역대 선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의 현안들은 중앙 정치 이슈에 가려졌다. 구청장 등 기초단체장 뿐만 아니라 시의원·구의원 후보들의 팸플릿은 "박원순 심판" 또는 "현 정부 심판"으로 도배됐다. 교육감 선거도 마찬가지다. 후보자들의 이른바 '가족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교육정책은 유권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심지어 부산에서 일부 유권자들은 7장의 투표용지 중 시도의원·구시군의원·광역비례대표·기초비례대표를 를 제외한 3장(1단계)에만 투표하고 그냥 나가버리기도 했다. "투표는 자유 의사라 강제할 수 없어 난감하다"는게 선관위 관계자의 말이다.
그렇다고 유권자들만 탓할 수도 없다. 정작 '우리동네 공약'을 따져볼만한 충분한 정치적 공간이나 기회 조차 없었던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며칠 앞두고 출퇴근길에 받는 후보자의 명함과 집으로 배달되는 선거공보물을 꼼꼼히 챙겨보는 사람들은 그나마 보다 '적극적'인 유권자다. 하지만 이들 마저도 당을 보고 뽑는게 태반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이번 선거 뿐만 아니라 역대 선거에서 되풀이되는 고질적인 관행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지방선거가 시작된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진정한 지방자치의 길은 아직 요원해보인다.
해결책은 사실 '원칙'에 있다. 공약·정책 중심의 선거문화가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다. 지역을 위해 일할 일꾼들이 '생활밀착형' 공약을 제시하는데 힘을 쏟고, 주민들과 소통의 기회를 더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때다. 물론 주민들도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는 건 기본이다.